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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와 필드의 꿈, 골프 단상

상하이의 짧았던 봄이 지나고 스멀스멀 온몸으로 스며드는 습기처럼 여름이 다가왔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마우스와 자판을 잠시 움직이다 보면 금세 책상과 닿은 팔이 눅눅해지는 것을 느낀다. 상하이시는 비교적 잠잠하다가 작년 11월경부터 시내 곳곳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방역 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자 급기야 지난 3월 말부터 5월 말까지 약 두 달 동안 인구 2천5백만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극약 처방을 내렸다. 이처럼 장기간의 도시 봉쇄 조치는 비단 상하이에만 취해진 것도 아니다. 중국 공산당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면서 작년부터 시안, 선전 등 여러 도시들이 길고 짧은 기간 봉쇄되기도 했다. 이 주일 전에 두 달간 지속된 상하이 전역 도시 봉쇄가 해제되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08.31

충밍도(崇明岛; 숭명도)의 흔들리는 갈대

마도(摩都) 상하이 늦가을의 이른 아침이 안개에 싸여 있다. 상하이와 장쑤성을 경계 짓는 장강(长江)의 하구 끝 삼각주 한가운데 자리한 충밍도(崇明岛)로 향한다. 중환로 고가도로 올라서니 얽히고설킨 도로망이 흩트려 놓은 실타래 같이 복잡하다. 상하이 시내도 그렇지만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차를 몰고 외곽으로 나갈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육지와 충밍도 사이에 있는 창싱도(长兴岛)까지는 장강 밑을 뚫은 길이 8,955미터의 터널이다. 터널을 지나면서 문득 강바닥 밑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짐짓 강박이 되어 고개를 쳐들려 한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차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충밍도와 창싱도를 연결하는 상하이 장강대교는 강 위를 지나는 길이 9.97km 포함 총길이 16.63km의 ..

차(茶)와 인생, 텐산 차청(天山茶城)

2022년 '검은 호랑이의 해'가 밝은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중국 당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일상생활에 번거로움과 불편이 많은 현실이다. 신홍챠오화원(新虹桥花园) 공원에 접한 이리로(伊利路) 역 1번 출구에서 동료 M을 기다렸다. 공원의 수목 사이에서 중년 여인 한 분이 느릿한  태극권 동작을 하고 있다. 공기와 하나 된 듯 한 그루 나무인 듯 정지해 있는 듯 움직이는 듯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을 감추고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팽팽한 긴장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읽힌다. M과 함께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천산차성(天山茶城; 텐샨 차청)을 향해 걸었다. 기와지붕의 전통적 외관에 세 개의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천산차성에는 300여 개의 차 가게가 입주해 있다. 이른 시..

타이저우 천태산(天台山) 국청사와 대폭포

칠월의 마지막 주말이다. 상하이에서 고속철로 두 시간이면 닿는 저장성 타이저우(台州) 시 북부 텐타이현(天台县)에 있는 천태산(天台山)을 다녀올 요량이다. 집 앞에서 다섯 시 반경 택시를 타고 홍챠오 기차역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첫 전철을 타면 열차 시각에 맞춰 도착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출행에 대비해서 어제 퇴근을 하면서 아파트 근처 검사소에서 핵산 검사를 해두었고, 아침에 스마트 폰에 '음성'임을 알리는 녹색 큐알코드를 확보했다. 중국 곳곳 시시 때때 변하는 코로나 상황과 지역별로 차이가 있는 방역 정책을 일일이 알아보는 번거로움을 감수하기 싫다면 긴 주말 내내 찜통 같은 도시 속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태풍 '송다(Songda)'가 오늘 오후 상하이 앞 먼바다를 지나 황해 쪽으로 북상할 ..

신창(新场) 구쩐, 수향의 짙은 물빛

봄이 성큼 다가와서 날씨가 따사롭고 해도 조금 길어졌다. 평소 같으면 출행하기 애매한 오후 네 시경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상하이 푸동신구(浦东新区)에 있는 신창 구쩐이다. 주로 오전이나 한낮에만 둘러보던 다른 구쩐들과는 달리 해가 지는 어스름 녘이나 어둠이 내린 구쩐의 모습을 둘러보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을 성싶었다. 길거리 행인들의 옷차림이 많이 가벼워졌다. 전철 10호선에서 7호선과 16호선으로 갈아타며 한 시간 여만에 신창역(新场站)에서 내렸다. 고층빌딩이 숲을 이룬 시내 중심가와는 달리 상하이 교외의 사방으로 툭 트인 전망이 굳게 여미고 있던 마음의 빗장을 슬며시 풀게 한다. 겨울은 꼬리를 감춘 이른 봄날이지만 해가 지평선에서 한 뼘 정도 남은 늦은 오후라 공기가 제법 싸늘하다. 구쩐까지는 2k..

류저우(柳州) 명산 어드벤처

1. 가학산 호텔에서 땀을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객실 창밖으로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던 길 건너 가학산(驾鹤山; 지아허산)을 올라보기로 했다. 산정에 누각 하나가 자리한 소담한 산이 마음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길을 건너 공원으로 들어서서 녹지를 지나 수석처럼 버티고 선 가학산 남쪽 가장자리로 다가섰다. 암벽에 동굴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니 식당 주차장 화장실 등이 갖춰진 길고 너른 공간이 산의 서쪽 기슭 암벽까지 뚫려있다. 동굴 입구로 되돌아 나와 위태로워 보이는 수직 절벽 아래 자리한 '남평궁(南评宫)' 도교사원을 둘러보았다. 이 사원은 류저우의 3대 도교사원 중 하나로 당나라 때의 장상선(张相善) 장군 또는 한나라 때의 복파장군 마원(马援)을 주신으로 모시는데, 광시(广西) 일대의 난을 ..

쩐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진열관과 펄벅기념관

쩐장(镇江) 의 서진도(西津渡; 시진두) 옛 거리를 빠져나와 즈푸바오(支付宝) 앱을 열어 공형(公亨; 공헝) 자전거 큐알 코드를 스캔했다. 상하이를 비롯하여 여느 도시의 길거리마다 비치된 공용 자전거는 시민들뿐 아니라 여행자들에게도 매우 요긴한 존재다. 지도 앱을 나침반 삼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진열관'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막바지 여름의 열기로 온몸이 금세 후끈 달아오른다. 대서로(大西路; 따시루)를 거쳐 도착한 지도상의 진열관 부근은 높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고 담장 안쪽은 모든 건물들을 철거했는지 텅 비어 있다. 의아한 생각에 지도 앱을 다시 검색해 보니 근처 또 다른 곳에 '임정 사료진열관'이 표시된다. 양팔을 벌리면 벽에 양 손이 닿을 듯한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굽이돌아 겨우 '대한민국 임..

그리운 봄, 유채꽃 내음

상하이 교외 출행그 어느 때보다 조용한 주일 오전이다. 상하이 남부 9호선 종점 부근에 자리한 송난지아오예(松南郊野) 공원을 찾아볼 요량이다. 야오홍루(姚虹路) 역에서 15호선 전철에 올랐다. 객실이 헐렁하다. 9호선으로 갈아타는 계림로(桂林路) 역 플랫폼도 텅 빈 지하 벙크처럼 휑하다. 최근 이곳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 전역의 악화일로에 있는 코로나19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지우팅(九亭) 역을 지나자 지상으로 올라온 전철이 창밖으로 춘삼월 끝자락 희뿌연 공기에 잠긴 교외의 풍경을 펼쳐 보인다. 셔샨(佘山)역을 지날 즈음 작년 봄 이맘때 쯤 찾았던 상하이 최고봉으로 해발 100여 미터 남짓 높이 셔샨이 저멀리 보인다. 도로 건너편 건물들 틈틈이 자리한 논밭과 너른 공터의 파릇한 초목과 노란색 주..

바이족(백족; 白族)의 나라 남조(南詔)의 고도 따리(大理)

숭성사(崇聖寺)와 고성(古城)낯선 분위기에 아랑곳없는 듯 피곤한 몸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몇몇 곳에서 거절을 당한 뒤 겨우 예약을 한 따리(大理) 기차역 인근 숙소는 붉은색 하트 무늬로 도배된 '러브호텔' 냄새가 물씬 풍겨 일면 정신이 사나웠었다. 컵라면으로 아침을 들고 9시가 조금 지나 삼탑(三塔)이 있는 숭성사(崇聖寺)로 향했다. 삼탑 전선(三塔傳線) 버스는 출근 시간이 지나서인지 그리 붐비지 않는다.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차에 오르자 조용하던 버스 안이 갑자기 새들이 지저귀는 숲 속에 든 것처럼 수다 소리로 가득하다. 시얼허(西洱河) 위로 놓인 씽성대교(興盛大橋)를 지나는 버스 오른쪽 차창 밖으로 얼하이(洱海)가 펼쳐져 있고, 도로변에는 가지마다 붉은 꽃이 무성한 백일홍 가로수가 도열해 있다. ..

여산(廬山, Lushan) 진면목을 찾아서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었는지 상하이 날씨는 열기와 습기로 연일 후끈하다. 일과 후 집에 들러 짐을 챙겨 들고 일상의 탈출구 상하이 남역으로 향했다. 저녁에 출발해서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상하이발 난창행 열차에 올라 잉워(硬卧) 침대칸에 배낭을 내렸다. 북경에서 제남으로 가는 첫 야간 침대열차 탑승 경험 후 십칠 년 만에 타는 야간 침대열차다. 난창에 도착하면 곧바로 지우쟝(九江)행 열차로 갈아탈 것이다.  동남쪽으로 흐르던 양자강이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변곡점에 위치한 도시 지우쟝(九江), 그 동남쪽에 포양후(鄱阳湖)를 우측에 끼고 루산(庐山)이 자리하고 있다. 루산은 지꽁산(鸡公山) 베이따이허(北戴河) 모깐산(莫干山)과 더불어 중국의 4대 피서지 중 하나라고 한다.해발 1474미터 최고봉인 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