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장(镇江) 의 서진도(西津渡; 시진두) 옛 거리를 빠져나와 즈푸바오(支付宝) 앱을 열어 공형(公亨; 공헝) 자전거 큐알 코드를 스캔했다. 상하이를 비롯하여 여느 도시의 길거리마다 비치된 공용 자전거는 시민들뿐 아니라 여행자들에게도 매우 요긴한 존재다.
지도 앱을 나침반 삼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진열관'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막바지 여름의 열기로 온몸이 금세 후끈 달아오른다. 대서로(大西路; 따시루)를 거쳐 도착한 지도상의 진열관 부근은 높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고 담장 안쪽은 모든 건물들을 철거했는지 텅 비어 있다. 의아한 생각에 지도 앱을 다시 검색해 보니 근처 또 다른 곳에 '임정 사료진열관'이 표시된다.
양팔을 벌리면 벽에 양 손이 닿을 듯한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굽이돌아 겨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료 진열관'을 찾았다. 진열관은 컨테이너 대여섯 개를 이어 놓은 듯한 초라한 행색의 단층 건물로 짐짓 창고를 연상케 한다.
건물 안에는 김구 선생의 흉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 아마도 처음 찾아간 지도 앱에 있던 진열관은 도시 정비계획에 따라 철거되고 이곳으로 이전할 요량으로 내부 치장을 준비 중인 듯 보였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처럼 낮은 주택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도심 변두리, 좁은 골목들이 얽히고설킨 이런 곳으로 '임정 사료 진열관'을 이전하려 하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1919.4.11일 상하이에서 수립된 임정은 1945.8월까지 26년 4개월에 걸쳐 항저우, 쩐장, 우한, 창사, 광저우, 류저우, 구이양, 치장을 거쳐 충칭까지의 대장정을 이어갔다. 임정의 여정은 1934.10월부터 1936.10월까지 2년에 걸쳐 1만여 km에 이르는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大长征)' 보다 훨씬 오랜 기간 지속된 독립을 향한 위대한 인고의 역정이 아니었던가.
찜찜한 마음을 추스르며 진열관을 뒤로하고 대서로(大西路)를 향해 방향을 더듬으며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왔다. 골목길 맞은편 대서로 도로변 허름한 식당 앞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투박한 무쇠로 된 가마솥뚜껑을 엎어 놓은 것 같은 팬에 기름을 짠득 부어 구워낸 만두와 뜨거운 홍탕(红汤) 한 그릇으로 허허로운 마음과 허기를 달랬다.
당초 쩐장으로 훌쩍 달려오게 된 것은 펄벅(Paerl S. Buck, 1892-1973) 때문이었다. 갓난 아기 때 부모와 함께 중국으로 건너와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 <대지>를 집필하는 등 38년간 중국에 머문 그녀의 기념관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쩐장에 있는 그녀의 기념관은 임정사료진열관과 쩐장역에서 머지않은 곳 펄벅문화공원으로 조성된 낮은 언덕배기 아래 아늑하고 포근하게 안겨 있다.
중국어를 '제1언어', 쩐장(镇江)을 '중국의 고향'이라고 여겼다는 펄벅(중국명 赛珍珠; 사이쩐주)은 중국 농민의 삶을 다룬 장편소설 <大地(The Good Earth)>로 1932년 퓰리처상, 1938년 노벨문학상을 각각 수상했다.
그녀는 소동파의 "여산진면목(庐山真面目)"이라는 시구절로 유명한 강서성(江西省) 여산(庐山; 루샨)에서 <대지>를 완성했는데, 그곳에도 펄벅기념관이 있었다.
그녀는 미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꾸준히 집필을 이어갔고, 인권과 여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으며, 1942년에는 동서연합(East and West Association)을 창설하여 아시아와 서양의 문화적 이해와 교류에도 힘썼다고 한다.
펄벅은 한국에도 인류애와 박애정신의 깊은 족적을 남겼다. 몇 년 전 소래산과 그 인근 예닐곱 개의 산과 봉을 하루 만에 올랐는데, 부천의 성주산 자락에 안겨 있는 펄벅 기념관을 발견했었다.
그 기념관은 1965년 한국펄벅재단을 설립하여 부천 심곡동에 소사희망원(1967-1976년)을 건립 운영하는 등 다문화가정 아동들의 인권 향상과 복지 증진에 기여한 그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6년에 개관한 것이다.
그녀의 성장 배경이 된 중국의 공산화와 맹렬한 사회 인권운동은 당시 에드거 후버 FBI 국장 등 많은 반공주의자들의 경계 대상이 되었다.
미-중 화해 무드가 조성되던 닉슨 재임 시 그녀는 중국 방문을 희망했지만 그녀의 반공산주의적 입장 표명에 불만을 가진 중국의 거부로 방문이 무산되었다고 한다. 반평생을 보내며 문학작품을 통해 중국 농민들의 진솔한 삶을 세계에 알린 그녀이지만 완고한 정치 이념에 막혀 문전박대를 받은 것이다.
너른 대지에 번듯하게 자리한 2층 짜리 펄벅기념관을 둘러보았다. 기념관 내부에는 그녀의 가족과 출생, 중국 도착과 중국 생활, 집필 활동, 미국으로의 귀국 후 활동상 등이 소개되어 있고, 각국에서 발간된 그녀의 작품 등도 전시되고 있다.
기념관 앞마당과 정원에는 그녀와 그녀 가족 동상 등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그녀의 가족들이 살았던 서구식 2층 가옥도 잘 보존되어 있다.
1934년 귀국 후 중국 땅을 다시 밟을 수 없었지만, 쩐장을 비롯한 중국 내 몇몇 곳에 기념관과 동상 등 그녀의 족적을 기리는 기념물들이 잘 보존되어 남아 있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펄벅 기념관을 뒤로하고 쩐장역으로 향했다. 따가운 햇살과 뜨거운 열기로 몸은 지끈거린다. 자꾸만 떠올라 머리를 어지럽게 하는 임정 사료진열관의 초라한 행색을 물리치며 상하이행 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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