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6

열강 침탈의 전초지 쩐장(镇江)

1.중국에서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아무런 일정을 생각지 않다가 웹 검색 중 쩐장(镇江)에 펄벅(Paerl S. Buck, 1892-1973)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차 편을 검색해서 홍챠오역에서 11:03에 출발하는 쩐장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전쟝(镇江)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한 때 거쳐간 곳이자 유비, 손권, 노숙, 태사자 등 삼국지의 영웅들과 왕희지를 비롯한 수많은 시인묵객들의 자취가 어린 곳이기도 하다. 재작년 7월에 쩐장을 찾았을 때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촉-오 동맹이 맺어진 장소인 베이구산(北古山), 지아오샨(焦山)의 비림(碑林)과 아편전쟁 때 영국 군함을 저지하려던 포대 등을 둘러보았었다. 간간이 잠시동안 쏟아붓곤 하는 소낙비를 제외하곤 두어 주일째 맑은 날씨를 보였던 상하이처럼 장..

카테고리 없음 2024.09.19

신창(新场) 구쩐, 수향의 짙은 물빛

봄이 성큼 다가와서 날씨가 따사롭고 해도 조금 길어졌다. 평소 같으면 출행하기 애매한 오후 네 시경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상하이 푸동신구(浦东新区)에 있는 신창 구쩐이다. 주로 오전이나 한낮에만 둘러보던 다른 구쩐들과는 달리 해가 지는 어스름 녘이나 어둠이 내린 구쩐의 모습을 둘러보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을 성싶었다. 길거리 행인들의 옷차림이 많이 가벼워졌다. 전철 10호선에서 7호선과 16호선으로 갈아타며 한 시간 여만에 신창역(新场站)에서 내렸다. 고층빌딩이 숲을 이룬 시내 중심가와는 달리 상하이 교외의 사방으로 툭 트인 전망이 굳게 여미고 있던 마음의 빗장을 슬며시 풀게 한다. 겨울은 꼬리를 감춘 이른 봄날이지만 해가 지평선에서 한 뼘 정도 남은 늦은 오후라 공기가 제법 싸늘하다. 구쩐까지는 2k..

강남 땅 오월과 과일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자 오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다. 창밖에서 빌딩 사이에 비집고 선 수양버들이 처녀 머리카락 같은 가늘고 긴 가지를 늘어뜨리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린다. 퇴근 무렵 잠시 3층 야외 휴게실로 나가서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빌딩 숲 위로 보드랍고 가벼운 양털 같은 구름이 비췻빛 하늘을 수놓고 있다.들고 나는 대문이 하나이다 보니, 퇴근길에 동료를 마주치는 일이 잦다. 오늘도 대문을 나서려는데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동료 M이 차창을 내리고 옆 좌석을 내어준다. 사무실 앞에서 집까지 15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길거리 자전거(共享單車)를 타려던 참이었다.주차장처럼 밀리는 차도 옆 자전거 전용도로 위를 페달을 밟아 바람을 맞으며 물 흐르듯 지쳐가는 맛이 그만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수향 우쩐(水鄕 烏鎭)

고대 강남의 수향 속으로항쟈후(杭嘉湖) 평원에 위치한 우쩐(烏鎭)은 A5급 국가 풍경구로 강남의 대표적인 수향(水鄕)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상하이 전철 15호선 야오홍루(姚虹路) 역에서 난짠(南站) 역으로 향했다. 고속열차(高鐵)를 이용했던 저번 쑤저우 출행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시외버스로 가 보기로 했다. 통샹(桐鄕)에 딸린 우쩐은 통썅 기차역보다는 우쩐 버스터미널에서 더 가깝기 때문이다.후쑤항(沪蘇杭) 즉 상하이 소주 항주의 중심에 위치한 통썅(桐鄕)은 저쟝성 쟈싱시(嘉興市) 아래 현급 시(縣級市)로 징항 운하(京杭运河)가 지나고 양잠과 비단을 특산으로 하여 어미지향(鱼米之鄕) 또는 사조지부(丝绸之府)로 불린다.상하이에 와서 원거리 버스를 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새로운 것은 늘 부딪혀 배워야..

카테고리 없음 2024.08.27

강남 명루(名樓) 난창 등왕각에 오르다

한나절 여산(庐山) 유람의 흥취를 곱씹으며 피곤한 몸을 지우장(九江) 시내 호텔에서 다독였다. 다음날 아침, 호텔 방에서 복도로 나서니 후끈한 열기가 온몸으로 밀려든다. 식당에서 간단히 아침을 들고 짐을 챙겨 기차역으로 향했다. 기차역에서 가깝고 가성비가 좋아서 선택한 호텔은 주변이 온통 고층 아파트가 점령하고 있어 다소 삭막해 보였었다. 택시기사에게 물으니 구도심은 강변을 따라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양쪽에 망루처럼 높다란 구조물을 거느린 역사(驛舍)가 뭉게구름이 피어오른 하늘을 배경으로 멋진 작별인사를 선사한다. 역사 규모는 다른 큰 도시와 달리 아담하다. 우리가 탑승할 09:06발 난창 행 T397 기차는 산동성 칭다오(青岛)를 출발해서 광동성 선전(深圳)으로 가는 침대열차다. 난창은 1927년 8..

추일의 악양루(岳陽樓)

이국 땅 중국에서 맞이하는 추석연휴 마음에 이는 객수가 가을바람처럼 서늘하다. 황허루가 자리한 언덕배기 아래 숙소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6시가 조금 넘어 우창 역으로 이동했다. 호텔 복도로 나서니 어제 한낮에 느꼈던 열기가 여전하여 중국 4대 화로(火爐) 도시 중 하나라는 말이 실감 난다.1917년 3월 운행을 시작한 우창역(武昌站)은 상주인구 1,200만이 넘는 후베이성 성도 시민들을 전국 각지로 빠르게 실어 나르는 고속열차 발착 기지 역할을 우창남역 등에게 내어주고 대신 느린 열차만 운행한다.어제 상하이에서 타고 온 고속열차가 1898년 처음 '대지문역(大智門站)'이라는 이름으로 개통되었던 한커우역(漢口站)으로 들어온 것과는 대조적이다. 고속열차라면 1시간 이내에 도달할 위에양(岳阳)까지는 2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