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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新场) 구쩐, 수향의 짙은 물빛

라오짱(老張) 2024. 8. 31. 08:10

봄이 성큼 다가와서 날씨가 따사롭고 해도 조금 길어졌다. 평소 같으면 출행하기 애매한 오후 네 시경 집을 나섰다. 행선지는 상하이 푸동신구(浦东新区)에 있는 신창 구쩐이다. 주로 오전이나 한낮에만 둘러보던 다른 구쩐들과는 달리 해가 지는 어스름 녘이나 어둠이 내린 구쩐의 모습을 둘러보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을 성싶었다.

길거리 행인들의 옷차림이 많이 가벼워졌다. 전철 10호선에서 7호선과 16호선으로 갈아타며 한 시간 여만에 신창역(新场站)에서 내렸다. 고층빌딩이 숲을 이룬 시내 중심가와는 달리 상하이 교외의 사방으로 툭 트인 전망이 굳게 여미고 있던 마음의 빗장을 슬며시 풀게 한다.

겨울은 꼬리를 감춘 이른 봄날이지만  해가 지평선에서 한 뼘 정도 남은 늦은 오후라 공기가 제법 싸늘하다. 구쩐까지는 2km 남짓 멀지 않은 거리이지만 시간을 아낄 겸 해서 전철역 앞에 자리한 정류장에서 승객을 기다리는 1068路 버스에 올랐다.

지도 앱을 확대해서 보면 상하이에는 강(港) 허(河) 등으로 불리는 수 백 수 천 개 헤일 수 없이 많은 크고 작은 물길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상하이에 남아 있는 구쩐들은 대부분 이들 (港)이나 허(河)를 끼고 자리한다.

동서를 잇는 수로 베이쟈강(北闸港)과 리우자강(六灶港)이 홍푸교(洪福桥)에서 남북으로 뻗은 신창따지에(新场大街)와 교차하며 마을을 이룬 신창 구쩐도 마찬가지다. 작은 다리, 흐르는 물, 인가, 긴 골목, 다루(茶楼), 오래된 가게, 작은 사당, 옛 사찰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강남 수향을 그려내고 있다는 설명이 솔깃하다.

십여 분 만에 구쩐 북서쪽 가장자리쯤에서 버스를 내려 신펑공루(新奉公路)에 접한 시우먼(西五门)을 통해 구쩐으로 접어들었다.

강남지역 수향 특유의 수로와 좁은 골목 사이에 길게 줄지어선 낮은 기와지붕이 여느 구쩐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열린 대문 너머 가가호호에서 새어 나오는 주민들의 이 지역 사투리 대화 소리가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话)와는 완전히 달라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 색다르다.

신창 구쩐은 원래 바닷물로 소금을 생산하던 곳이었는데, 해변이 점점 물러나자 염민들이 살면서 상품을 교환하는 터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동쪽과 남쪽 해안까지는 각각 20km가 훌쩍 넘는데, 한때 이곳이 저장성 서부 여러 염전들 보다 소금 생산량이 많았다고 하니 좀처럼 믿기지가 않는다.

예전에 "석순리(石笋里)"라고 불린 이곳은 한때 "작은 신창이 쑤저우와 맞먹는다(小小新场赛苏州)"는 명성을 떨쳤다고 하니, 천 년 세월의 긴 역사를 이어온 구쩐은 켜켜이 쌓여온 세월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노파들이 길바닥이나 리어카에 채소를 펼쳐놓고 팔고 있는 수로 북변 홍시지에(洪西街) 초입을 지나고 먹거리, 수공예품, 분재, 고서적, 장신구 등 다양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과 가게들이 줄지어선 좁은 골목을 따라 구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호젓한 봄날 한때 구쩐의 정취를 한껏 누렸을 상춘객들은 출구 쪽을 향해  귀로의 발길을 서두른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아 창틀로 불빛이 비쳐 나오는 단층이나 복층의 낮은 옛 건물들 처마에는 홍등이 붉을 밝혔고 서쪽 하늘에는 초승달이 외롭게 떴다.

홍푸교(洪福桥) 부근에서 발길을 돌려 북문 쪽 골목을 둘러보며 출출해하는 배를 달래기로 했다.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삼언양완(三言两碗)'이라는 이름의 식당에서 양춘미엔(阳春面)과 샹구미엔진(香菇面筋) 한 그릇씩을 시켰다. 면은 꼬들꼬들해서 씹히는 맛이 좋고 뜨끈한 국물은 한기를 쫓기에 좋았다.  미엔진(面筋)은 고수처럼 면에 넣어 함께 먹는데 글루텐, 표고버섯, 죽순, 유채 등 주재료에 간장, 설탕, 미약, 맛술, 전분 등을 첨가해서 만드는 상하이 지역 고유 음식이라고 한다.
 
리우자강(六灶港) 북변 홍동가(洪东街)를 따라가다 보면 수로 건너편으로 걸린 동창교(东仓桥) 청룡교(青龙桥) 요월교(邀月桥) 등을 스쳐지나 다른 다리에 비해 규모가 남다른 동쪽 끝 아치형 돌다리 천추교(千秋桥)에 닿는다. 다리 건너 장랑이 딸린 정자 난간에서 친구 두어 분을 관객삼아 동네 어른 한 분이 토해내는 짙은 색소폰 소리가 달빛과 어둠 사이로 스며들며 마음을 흔든다.
 
긴 수로 저편 서쪽 하늘에 떠있는 초승달을 보며 '달을 맞이하는 다리'라는 이름에 걸맞는  요월교(邀月桥)를 건너 수로 남쪽을 따라 난 허탕지에(河唐街)로 들어섰다. 죽 늘어선 식당들 중에는 상춘객들로 북적이는 곳도 있고 손님이 없는 일부 식당들은 하루를 마감할 채비를 하고 있다.

홍복교에 못미쳐 허탕지에 끝 지점에 '소인서옥(小人書屋)'이라는 아동용 구서(舊書) 가게가 눈에 띄어 주인장에게 말을 걸었다. 첸씨는 60대 초반으로 일 년 전 번잡한 상하이 시내를 벗어나 이곳으로 와서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길지 않은 대화를 마치고 발길을 돌리려는 뜨내기에게 어릴적 보며 자랐다는 '무꾸이잉(穆桂英)'이라는 제목의 만화책 두 권을 봉지에 담아 건네주며 작은 선물이라고 한다. 명나라 때의 소설《杨家将传》에 등장하는 여걸의 무용담에 홀딱 빠졌을 그의 어린 시절이 머리 속에 그려지며 입가에 은근히 미소가 번진다.

어둠이 내린 구쩐 수로의 무채색 수면에 고풍스러운 건물 처마에 줄지어 걸린 붉은 홍등이 어른거린다.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上善若水)"는 노자의 말처럼 어쩌면 물은 현실의 추한 모습을 감춰주고 때론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비춰 주는 아량과 넉넉함이 있다.

책 가게 바로 옆에 '강남 제일루(江南第一楼)가 자리한다. 수로와 그 위에 걸린 아치형 돌다리 홍푸교(洪福桥)를 내려다보는 3층짜리 목조건물엔 '제일루 다원(第一楼茶园)'라는 세로글씨 목판이 걸려 있다. '청풍 제일 다루(清风第一茶楼)'로도 불리던 이 건물은 층층 차를 마시는 공간, 접객을 하던 아좌(雅座), 객실로 각각 구분 지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건물이 이안 감독의 <색계(色戒)>를 비롯해서 <엽문(叶问)>, <파라다이스(摆渡人)> 등 영화가 촬영된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기대치 못한 뜻밖의 즐거움이다.

영화 '색계(色戒)'는 개봉 당시 얼핏 '색계(色计)'라는 제목이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지만, "사랑과 표적의 경계에 서다. 욕망 그 위험한 色, 신중 그 위험한 戒"라는 홍보 문구가 단순한 첩보나 멜로 영화가 아닐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었다.

이안 감독은 만 명이 넘는 지원자 중에서   탕웨이(汤唯)를 여주인공 역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예부터 미인이 많은 고장으로 소문난 항저우 출신의 그녀는 이 영화를 계기로 일약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배우가 되었다.

이안 감독은 상하이 주변의 내로라하는 여러 구쩐들 가운데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이곳에 와서 이 자리에 서보니 배역 고르는 안목 못지않게 촬영지를 물색하고 장면을 연출해 내는 그의 안목과 능력 또한 탁월해 보인다.

돌다리, 흐르는 물, 가게들이 늘어선 긴 골목 등을 옆에 낀 절묘한 위치, 초라하지도 고압적이지도 않은 3층 높이의 나무로 지은 이 다루(茶楼)는 신창 구쩐의 백미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문을 닫은 다원(茶园)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은 신창대가(新场大街)를 따라 족히 500여 미터를 걸어 스쑨가(石笋街)에 닿았다. 그 중간 파이뤄로(牌楼路)를 건너기 전에 지나온 네 기둥 세 개 문을 가진 5층 석제 패루인 삼세이품방(三世二品坊)은 아름다운 조각으로 치장한 웅장한 모습이 '강남제일 패루'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어둠에 감싸인 구쩐 외곽 골목은 현지 주민들이 한 두 명 지나다닐 뿐 인적이 드물다. 골목을 따라 남쪽으로 500여 미터를 더 가면 남산사(南山寺)가 있을 터이고 구쩐은 또 다른 모습을 감추고 있을 것이다.

매년 4,5월이 되면 근처 도원(桃苑)에 복숭아꽃이 만개한다고 하니, 십경(十景)이나 여덟 가지 맛(老八样) 등 오늘 미처 찾아보지 못하고 놓친 것들 중 몇몇을 돌아보고 맛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1068路 버스에 올라 전철역으로 하는 마음속에 수로 물 위에 어른거리던 홍등 불빛이 잔잔히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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