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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밍도(崇明岛; 숭명도)의 흔들리는 갈대

라오짱(老張) 2024. 8. 31. 13:01

상하이 충밍도(崇明島) 과일 파는 농민

마도(摩都) 상하이 늦가을의 이른 아침이 안개에 싸여 있다. 상하이와 장쑤성을 경계 짓는 장강(长江)의 하구 끝 삼각주 한가운데 자리한 충밍도(崇明岛)로 향한다.

 

중환로 고가도로 올라서니 얽히고설킨 도로망이 흩트려 놓은 실타래 같이 복잡하다. 상하이 시내도 그렇지만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차를 몰고 외곽으로 나갈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육지와 충밍도 사이에 있는 창싱도(长兴岛)까지는 장강 밑을 뚫은 길이 8,955미터의 터널이다. 터널을 지나면서 문득 강바닥 밑을 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짐짓 강박이 되어 고개를 쳐들려 한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차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충밍도와 창싱도를 연결하는 상하이 장강대교는 강 위를 지나는 길이 9.97km 포함 총길이 16.63km의 교량으로 착공 5년 만인 2009년 10월 31일 개통되었다. 같은 해 같은 달 개통된 총길이 12.3km 인천대교와는 왕복 6차선 사장교라는 공통점도 가졌는데, 모양도 서로 매우 흡사해서 같은 사람이 설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장강대교(위)/인천대교(아래)
집에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바나나처럼 길게 자리한 충밍도를 가르 지르는 첸하이공로(陈海公路)에 접한 톨게이트에 닿았다. 장강 상류 쪽 섬의 끝자락에 위치한 시샤밍주후(西沙明珠湖) 풍경구로 직행했다. 곧게 뻗은 공로 좌우로 울창한 산림과 드넓은 평원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충밍도는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섬으로 2010년대 기준 면적 약 1,269k㎡ 로 중국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 약 1,850k㎡의 화산섬 제주도와는 달리 충밍도는 섬 전체가 평탄한 지형으로 토지가 비옥하고 산림이 무성하다.

 

16세기 경의 이 지역 지도를 찾아보니 충밍 지역은 강물에 실려 내려와 조수 오래간만에 밀고 밀려 불어나고 무너지는 여러 개 모래톱 섬들이 모여 있는 형세였다. 섬 사이 물길을 막고 제방을 쌓아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점차 온전한 하나의 섬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반 세기 여 만에 넓이가 두 배로 확장되어 현재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충밍의 1400년 발전사는 바다를 낀 땅을 개척하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밭을 만들어 경작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 오늘에 이른, 그야말로 주민들이 땀과 눈를로 푸른 바다(沧海)를 뽕나무 밭(桑田)으로 만든 힘겨운 대장정의 역정인 것이다.

 

장강 상류 쪽 섬의 끝자락에 위치한 시샤밍주호(西沙明珠湖) 풍경구로 직행했다. 충밍도는 제주도 보다 조금 작은 섬이지만 강 하구 삼각주 섬이라서 그런지 길쭉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시샤밍주후(西沙明珠湖) 풍경구

섬에 들어서서 직선으로 뻗은 쩐하이 공로(陈海公路)를 따라 약 60km를 달려 시샤밍주호로 향하는 갈림길 좁은 도로로 내려섰다. 외지인 자동차들만 씽씽 달리는 2차선 도로변에 마을 주민들로 보이는 촌로들이 종이 상자에 귤을 담아서 바닥에 내려놓고 앉아 있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차를 돌려세우고 다가가니 몇 분이 다가오며 자기 물건을 사라며 채근을 한다. 크고 작은 씨알 여러 종류의 귤들 가운데 한 노파가 내다 놓은 한라봉처럼 큼지막하게 생긴 것을 골라 비닐봉지 가득 담았다. 저울에 무게를 달더니 220위안쯤 되는데 20위안어치라 하니 시내 과일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저렴한 셈이다. 그 옆 노인은 씨알이 작은 귤을 한 봉지 담아서 건네주며 사라고 채근한다.

 

두 봉지의 귤 중에서 씨알이 큰 것은 모양새는 물론이고 그 맛도 제주도의 한라봉과 매우 흡사하여 신기했다. 사실 상하이와 제주도는 위도 차이 약 2.11도로 230킬로미터에 불과하고 직선거리도 채 500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날씨 예보가 상하이 날씨와 유사하게 들어맞을 때가 많은 것을 보면 쉬이 수긍이 되기도 한다.

 

풍토나 습속이 인간의 습성도 바꾼다는 의미로 "귤이 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橘化为枳)."라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이 말의 유래야 어떻든 실제 황허(黄河)와 창장(长江) 사이에 동서로 흐르는 회수 즉 화이허(淮河)의 위아래 지역의 기후와 풍토는 다를 수밖에 없을 터이다.

 

큰 호수를 끼고 그 둘레에 울창한 삼림과 습지가 자리한 시샤밍주(西沙明珠湖) 풍경구를 반 바퀴는 도보로 나머지 반 바퀴는 자전거로 족히 두 시간 반 만에 한 바퀴 돌았다. 장강에 살았다는 '양쯔강 돌고래'로 짐작되는 조각상이 호수공원 입구에는 눈길을 잡는다.

 

호수 한쪽 가장자리를 따라 난 잔교를 가로질러 핑크뮬리 꽃밭, 향장목, 야자수, 은행나무, 대나무 등 각종 수목들의 숲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옷을 갈아입고 방문객에게 가슴을 트고 깊은 숨을 한 번 쉬어보라고 권한다.

시샤(西沙) 습지공원

차량으로 인접해 있는 시샤(西沙) 습지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 주차장은 전세 버스 등 차량들로 빼곡하고 공원은 입구부터 많은 방문객들이 눈에 띈다.

 

충밍 서쪽 남단에 위치한 시사(西沙) 습지공원은 총면적 300헥타르로 2005년 9월 19일에 설립되었다고 한다. 호수, 갯벌, 내하천, 갈대숲, 늪 등 다양한 습지 형태를 가지고 있는 이곳은 바다와 가까운 장강(长江) 하구에 위치하여 조수 현상과 갯벌과 임야가 어우러진 상하이 유일의 자연 습지로 상하이 과학기술위원회의 습지 생태 복원 실험 기지이기도 하다.

 

낙엽송 군락지와 맹그로브 숲 사이로 난 데크를 지나고 바람에 바닷물처럼 일렁이는 갈대밭 사이도 지나며 습지의 다양한 생태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의 순천만국가정원 몇 개를 합쳐 놓은 듯 광대한 넓이의 습지공원을 주섬주섬 둘러보고 귀로에 오른다.

 

총밍 중앙을 가로지르는 쩐하이 공로(陈海公路) 대신에 섬 남쪽 장강변 도로를 따라 귀로를 잡았다. 장강과 맞닿은 길 가장자리를 따라 쌓은 콘크리트 제방은 웬만한 폭우에도 끄떡없이 강물의 범람을 막아줄 수 있을 것처럼 튼실해 보인다.

 

전답과 숲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은 예전엔 강물이 드나들던 사구(沙丘)로 이루어진 여러 개 섬들이 있던 자리였을 것이다. 수로를 끼고 반듯하게 구획된 논에서는 트랙터로 늦은 수확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일면 인간은 시샤습지의 저 갈대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곳 에서 '상전벽해'의 역사를 일구어낸 주민들의 불굴의 개척정신을 목도한다면 결코 나약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파스칼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로써 사유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갈파했지만, 사유에만 머무르지 않고 거칠고 열악한 자연에 맞서 행동하는 불굴의 정신이야말로 인간의 위대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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