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검은 호랑이의 해'가 밝은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여전히 중국 당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고 있어 일상생활에 번거로움과 불편이 많은 현실이다. 신홍챠오화원(新虹桥花园) 공원에 접한 이리로(伊利路) 역 1번 출구에서 동료 M을 기다렸다.
공원의 수목 사이에서 중년 여인 한 분이 느릿한 태극권 동작을 하고 있다. 공기와 하나 된 듯 한 그루 나무인 듯 정지해 있는 듯 움직이는 듯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을 감추고 있는 정중동(靜中動)의 팽팽한 긴장과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아름다움이 읽힌다.
M과 함께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천산차성(天山茶城; 텐샨 차청)을 향해 걸었다. 기와지붕의 전통적 외관에 세 개의 건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천산차성에는 300여 개의 차 가게가 입주해 있다. 이른 시각이고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어 그런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대부분이고 목 좋은 1층 입구의 몇몇 가게들만 문을 열어 놓고 있다.
푸젠, 광저우, 타이완, 윈난, 안후이 등 중국 내 유명 차(茶) 산지의 이름을 내건 가게들은 우롱차, 대홍포(大红袍), 철관음(铁观音), 보이(普洱), 루안 과피엔(六安瓜片) 등 중국 각 지역별로 이름난 차 제품들을 채반에 널어놓거나, 크고 작은 통에 담거나, 캔 봉지 등 소매용으로 포장해서 진열하고 있다.
차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지 않은 탓에 일층을 대충 훑어보고 계단을 따라 이층으로 올랐다. 일층과 마찬가지로 이층도 너른 공간에 수십 수백 개로 구획하여 부스를 차려놓은 박람회장처럼 차 가게들이 좁은 복도와 접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중 '육향차업(六香茶业; 리우샹차예)'이라는 간판이 달린 점포로 들어섰다. 허창영이라는 이름의 가게 주인은 저장성 출신으로 20세 때 상하이로 와서 상하이에서 가장 오래된 차성(茶城; 차청) 중 하나인 이 차청이 생긴 2002년 9월부터 20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에게 찻상 앞자리를 내어주며 용정 녹차를 작은 찻잔에 부어 권한다. 그의 고향인 저장성 안지(安吉)의 백차(白茶)는 부드럽고 구수한 숭늉맛이 난다고 한다. 연이어 뜨거운 물에 우려낸 백차, 황차, 녹차 등을 차례로 권하면서 저장성 천태산(天台山) 황차(黄茶)는 쓴맛이 없고 부드러워서 오전에 마시고, 용정(龙井) 녹차(绿茶)는 조금 더 강하고 약간 쓴맛이라 주로 오후에 마신다고 귀띔해 준다.
함께 차를 음미하며 '인생은 고해(苦海)'라는 말이 있지만, 중국에는 '인생은 차와 같다(人生如茶)'는 말도 있다고 소개한다. '처음은 쓰고 나중은 달다(始苦后甜 有苦有甜)'는 말은 고해와 같은 인생길을 처음엔 쓴맛이지만 점점 달달해지는 차에 비유하여 던지는 작은 위안의 말이다.
한편, 자신의 인생이 녹차를 닮았다는 그의 말에는 스무 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 이곳 상하이로 왔다는 그가 겪었을 험난한 인생 역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급속한 개방과 세계화 바람으로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차 대신 커피를 찾는 이들이 증가하고 그에 따라 커피숍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차와 커피는 보완재라기 보가는 대체재의 성격이 짙어 차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걱정스런 대목이다. 중국인들의 삶과 불가분의 존재였던 차와 차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사랑이 아무쪼록 오래도록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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