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오디세이 52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

요즘 상하이 지하철을 탈 때면 지하보도나 플랫폼 벽면에서 인공지능 그림들이 자주 눈에 띕니다.무엇이건 '천하제일'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이처럼 완벽? 한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 그림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출일까?한두 점도 아니고 전철역을 도배하다시피 많은 AI 그림들로 채워 놓은 이유가 뭘까 의아했습니다.일상생활에서 지폐 사용이 거의 사라진 지금, 바야흐로 중국은 디지털 데이터로 움직이고 통제되는 사회로 치닫고 있습니다.그 영역이 미술을 포함한 예술 전체까지 잠식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번 주말에 집에서 가까운 쉬쟈후이(徐家汇)에 있는 천주교 성당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외관이 웅장하고 아름다웠지만 굳게 닫힌 철문이 가로막고 있어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을 실망케 했습니다. 미사 시간을  ..

쟈딩, 상하이 들춰보기(II)

치우샤푸(秋霞圃) 수로 위에 걸린 아치형 돌다리 더푸교(德富桥)를 건넜다. 지붕보다 높이를 한껏 추켜올리고 계단식 흰색 외벽에 기와를 얹은 멋들어진 건물이 돌다리와 어우러져 강남 지방의 전형적인 풍치를 그려내고 있다. 저우챠오 노가(州桥老街)를 가로질러 직선거리 오백여 미터쯤에 자리한 치우샤푸(秋霞圃)로 걸음을 옮긴다. 치우샤푸는 명나라 때인 1502년에 건설된 500여 년 역사를 지닌 고전 원림으로 정원 내 건축물 대부분이 명나라의 것이고 읍묘(邑庙)는 송나라 때 건립되었다고 한다. 치우샤푸(秋霞圃)는 주이바이츠(醉白池), 위위엔(豫园), 구이위엔(古漪园), 취수이위엔(曲水园)과 함께 상하이 5대 고전 원림이라 불린다. 공(龚), 심(沈), 김(金) 세 성씨의 정원과 읍묘(城隍庙)가 합쳐져 조성된 치우..

쟈딩, 상하이 들춰보기(I)

주말 아침 눈을 일찍 떴다. 7시 반경 집을 나서 지하철 11호선 종점인 쟈딩북역(嘉定北站)으로 향했다. 그 부근에 모여 있는 후이롱탄(汇龙潭) 공원, 치우샤푸(秋霞圃), 저우챠오 노가(州桥老街) 등을 둘러볼 생각이다. 쟈딩은 '리우청(疁城)'으로도 불리는데 상하이에 속하는 구(区) 가운데 하나로 시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2021년 기준 인구는 약 70만이라고 한다. 진나라 때에는 회계군(会稽郡), 수당 때에는 쑤저우 쿤산현에 속했고, 남송 가정 10년(1218년)에 쟈딩현(嘉定县)으로 독립했다고 하니 역사가 장구한 고장이다. 상하이에는 남송 함순 3년(1267년)에 푸시(浦西) 지역에 상하이 진(上海镇), 원나라 때인 1292년 상하이 현(县)이 각각 설치되었으니, 당시 쟈딩은 지금의 상하이 중심부보다 ..

황학루 찾아 화로 속으로

석연휴가 시작되었다. 타국에 혼자 나와 있으니 이번 추석은 가족들과 얼굴을 맞대고 밥 한끼를 나눌 수도 없고 부모님 산소에 술 한 잔 부어드릴 수도 없다. 이럴 때 그냥 죽치고 앉아 있으면, 거대한 이 도시 상하이는 오히려 좁은 감방처럼 느껴질 것이다. '명루(名楼) 탐방'이라는 주제의 2박3일 기행을 기획했다. 우한(武汉)으로 가서 위에양(岳阳)과 창사(长沙)를 거쳐 상하이로 돌아올 요량이다. 우한과 위에양에는 각각 황학루와 악양루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칠월에 난창(南昌)의 등왕각(滕王阁)에 이어 이번에 두 누각을 둘러보면 소위 '강남 3대 누각'을 모두 찾아보는 셈이다. 또 어쩌면 강남 3대 명루(名楼) 중 그 어느 곳에서 둥근 달을 감상하는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각이 뭐 그리 대단하..

시탕(西塘) 구쩐

상하이 밖으로금년 들어 두 번째로 맞는 주말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저장성 쟈싱시 시탕(西塘) 구쩐으로 차를 몰았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그치질 않는다. 상하이와 충칭을 잇는 후위(沪渝)와 상하이 푸동-쟈싱-후저우를 잇는 션쟈후(申嘉湖) 고속도로를 갈아타며 목적지로 향한다. 빌딩 숲이 차지한 도심을 벗어나자 거칠 것 하나 없이 너른 평원의 초목과 흰 벽에 붉은 지붕의 낮은 주택들이 목가적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비에 젖은 무거운 공기는 하늘과 땅 사이 공간을 무채색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도로변에 겹겹 오선지를 걸쳐 놓은 듯 전깃줄을 걸치고 늘어선 거대한 송전탑들은 북유럽 전설 속의 몬스터 트롤(Troll)이 심술굿은 장난을 치려고 줄지어서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비 오는 날에 구..

모깐산(莫干山) 기행

중국 강남제일산(江南第一山)광복절을 낀 3일간의 연휴다. 이틀 후인 광복절이 말복인데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상하이의 삼복더위가 만만찮다. 중국 대륙 내 4대 피서지라는 여산(庐山), 베이따아허(北戴河), 지꽁산(鸡公山), 모깐산(莫干山) 가운데 모깐산이 지척에 있어 마음이 움직였다.처음으로 차를 몰아 먼 길을 나서는 김에 모깐산을 둘러본 후 붉은빛이 도는 자사(紫砂) 도자기로 유명한 이씽(宜兴)을 거쳐 서울시 네 배 넓이의 타이후(太湖)를 한 바퀴 돌아서 상하이로 돌아오기로 했다.5:40경 집을 출발해서 타이후 남쪽 후저우(湖州)와 항저우 경계를 이루는 모깐산으로 차를 몰았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서 상하이와 충칭을 잇는 후위(沪渝), 창처우와 쟈싱(嘉兴)을 잇는 창쟈(常嘉), 상하이-쟈..

상하이 유태 난민 기념관

"한 사람을 구함은 세상을 구함이다"마음껏 게으름을 피우며 느긋하게 침대에서 일어난 주말 아침이다. 지하철 15호선을 12호선으로 환승하여 티란루(提蓝路) 역에서 내렸다. '상하이 유태인 난민 기념관'을 둘러보려고 집을 나선 것이다. 녹음이 무성한 가로수와 도로 분리대 화단의 화사한 장미꽃이 오월을 알리고 있다. 도로변 작은 공원엔 수국이 진녹색 이파리 위로 탐스런 꽃송이들을 수북이 내밀었다. 차량 소음에 섞여 '꾸우꾹-' 들리는 비둘기 소리는 녹지가 많은 상하이에서는 별난 일도 아니다. 유태 난민 기념관에 도착해서 20위안을 지불하고 입구로 들어섰다. 아래 내용은 기념관 전시물, 설명문, 사료, 현지 검색엔진 등을 통해 파악한 내용을 정리해 본 것으로 자료마다 일부 차이점도 발견된다. 상하이 유태인 난..

코로나의 추억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역설적으로 추억이란 단어로 바꾸어 제목을 달아 보았습니다. 영화 처럼. 때는 2022년 장소는 중국 상하이입니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 12월 중순임을 알립니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계절, 상하이는 아직도 가을 정취가 더 짙게 머물고 있습니다.망망한 코로나19의 강을 건너가 흉포한 급류에 휩쓸려 표류한 지 나흘째입니다. 침대 머리맡에 둔 휴대폰이 방전될 때마다 몸을 일으키는 일이 이렇게 번거롭고 온몸에 고통이 따를 줄이야... 지난 12월 7일 중국 국무원은 를 발표했습니다. 그 주요 내용은 임의적인 봉쇄 지역 확대 금지, PCR 검사 빈도와 규모 축소, 특수장소 외 PCR 검사 결과나 건강 QR코드 검사 폐지, 무증상자와 경증환자 자가격리, 중앙집중식 격리치료 자발..

상하이 현대 미술관(现代美术馆)

새해 첫날이다. 하이룬로(海伦路)에 있는 '상하이 둬룬 현대미술관(上海多伦现代美术馆)'으로 향했다. 여느 주말처럼 지하철은 승객이 적지 않다. 예원(豫园) 역에서 일단의 노인들이 우루루 몰려 타자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승객들이 하나둘 슬며시 일어나 자리를 내어준다. 하이룬로(海伦路) 역 5번 출구 뒤쪽 담장으로 둘러싸인 너른 지역을 곳곳에서 보안들이 포위하듯 지키고 있다. 썬이모 구거(沈尹默 旧居)라는 명패가 붙어 있는 옛 집도 굳게 닫혀 있다. 들고나는 출입구의 철책 문이 모두 잠겨 있고 그 앞에서 보안(保安)들이 무료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출입을 단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철거를 앞두고 있는 구역인 듯 보인다. 새 것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시대나 매 한 가지인가 보다. 창춘로(长..

도자기 도시 경덕진(景德鎭; 징더쩐)

대륙의 밤을 가로질러봄비가 나흘째 오락가락하고 있다. 주말을 끼고 벼르던 쟝시성(江西省) 징더쩐(景德镇)으로의 출행을 감행하려 오후 네 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집 앞 정원의 자목련은 짓궂은 봄비와 꽃샘바람에도 가지마다 화사하게 만개한 꽃가지를 잘 간수하고 있다. 이번 출행의 개략적인 일정을 오후 늦게 상하이를 출발해서 자정 이전에 징더쩐에 도착, 호텔에서 일박, 그다음 날 박물관 관람 등 도자기 관련 탐방, 오후 7시 전후에 징더쩐을 출발해서 상하이로 귀환하는 것으로 잡았다. 홍챠오(虹桥) 기차역은 오늘도 예전처럼 인파로 넘쳐나지만 코로나19 음성확인 철차가 없어져서 역사 안 진입과 탑승 절차가 한결 수월해졌다. 시일이 촉박해서 출행을 결정하고 숙소와 기차표를 예약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