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오디세이

쟈딩, 상하이 들춰보기(I)

라오짱(老張) 2024. 9. 18. 14:27

주말 아침 눈을 일찍 떴다. 7시 반경 집을 나서 지하철 11호선 종점인 쟈딩북역(嘉定北站)으로 향했다. 그 부근에 모여 있는 후이롱탄(汇龙潭) 공원, 치우샤푸(秋霞), 저우챠오 노가(州桥老街) 등을 둘러볼 생각이다.

 

쟈딩은 '리우청(疁城)'으로도 불리는데 상하이에 속하는 구(区) 가운데 하나로 시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2021년 기준 인구는 약 70만이라고 한다. 진나라 때에는 회계군(会稽郡), 수당 때에는 쑤저우 쿤산현에 속했고, 남송 가정 10년(1218년)에 쟈딩현(嘉定县)으로 독립했다고 하니 역사가 장구한 고장이다.

 

상하이에는 남송 함순 3년(1267년)에 푸시(浦西) 지역에 상하이 진(上海镇), 원나라 때인 1292년 상하이 현(县)이 각각 설치되었으니, 당시 쟈딩은 지금의 상하이 중심부보다 앞서 지방 행정구역으로 정비되었음을 알 수 있다.

 

Every town

Has its ups and downs

Sometime ups

Outnumber the downs

But not in Nottingham

......

 

애니메이션 영화 '로빈훗'의 삽입곡 가사처럼 어떤 마을이든 흥망성쇠를 피해 갈 수는 없겠건만, 이곳 쟈딩은 오랜동안 고유의 정체성을 잘 지켜온 것으로 보인다.

전철에서 내려 자전거를 타고 쟈딩의 옛 중심지로 향했다. 고서점 탐방 취미를 가진 지인이 소개해 준 '바오윈탕 구서점(宝云堂旧书店)'에 먼저 들렀다.  

 

서점은 저우챠오 라오지에를 횡축으로 가로지르는 수로 서편에 위치해 있다. 수로에 접한 좁은 도로 가장자리 돌 난간에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발행된 잡지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머리에 닿을 듯 낮은 단층짜리 오래된 건물의 대여섯 평 넓이 좁은 서점에서 주인 부부와 젊은 아들이 벽 둘레로 배치된 자그마한 진열장에 낡은 책들을 장르별로 구분해서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가게 안쪽 주거지로 연결된 좁은 통로에는 먼지와 세월이 내려앉은 낡은 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책꽂이를 훑어보던 중 컬러화보에 설명을 곁들인 '실크로드' 소개 책자가 눈에 들어왔다. 1994년 대만에서 출판된 책으로 보석을 만난 기분이다. 주인장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맨 뒷페이지에 쓰여있다"라고 대답한다.

연필로 쓰여 있는 '15' 글자대로 알리페이로 15 위안을 지불하고 비닐봉지에 넣어주는 그 책을 건네받았다.

Jean Pierre Drege 원저 <丝绸之路, 실크로드>, 台北 시보문화출판

수로를 따라 '고완(古玩)' 골동품점 등이 자리한 좁은 골목길을 지나 법화탑(法华塔)이 자리한 경내로 들어서니 구웨이쥔(顾维钧, 1888-1985) 기념관이 맞이한다. 쟈딩은 20세기에 여러 중국 외교관을 배출하여 "외교관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구(顾)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외교관 중 한 명이라고 한다.

 

이곳 쟈딩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하여  콜럼비아 대학을 졸업하고 북양정부의 외무상, 재무상, 총리 대행, 국민정부의 외교부장, 주프랑스 주영국 및 주미 대사, 헤이그 국제재판소 판사 등을 역임했다고 한다.

 

한편, 그는 파리강화회의 등 여러 조약에 참석했고, 유엔헌장 초안 작성 참여 및 중국 대표로 서명하는 등 평생 전문 외교관의 길을 걸었다고 하니, 중국 1세대 직업외교관의 대표적 인물로 '민국 제일의 외교가'로 불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탑원 내 구웨이쥔 기념관 맞은편에 주윈탕(翥云堂)이 자리한다. 이 건물은 명나라 때인 1629년 어사 조홍범(趙洪范)이 윈난 지역 순시중 '저운봉(翥云峰)'이라는 기이한 바위를 가져와 당(堂) 앞에 놓은 연유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원래 동따지에(东大街)에 있던 것을 주인과 용도가 여러 번 바뀐 끝에 1998년 구시가지 재건축으로 인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하니 뜯겨 없어지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건물 입구 벽면에는 '후줴원 생평진열관(胡厥文生平陈列馆)', '주윈탕(翥云堂)' 명패와 함께 '상하이시 민영 경제인사 이상 신념 교육기지(理想信念教育基地)'라는 명판이 함께 나란히 붙어 있다.

 

진열관 내부 설명문들은 쟈딩에서 태어나고 상하이시 정협 부회장과 부시장,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주석, 전국공상연합 상무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후줴원(胡厥文, 1895-1989)을 '충성스러운 애국자''유명한 정치 활동가''뛰어난 기업가''중국 민주건설협회 창립자''중국 공산당의 절친한 친구' 등으로 칭송하고 있다.

구웨이쥔(顾维钧),법화탑(法华塔), '후줴원(胡厥文)

진열관 뒤쪽에 쟈딩 죽각(竹刻) 박물관이 자리한다. 자딩 출신인 주허(朱鹤)는 16세기에 최초로 회화와 서예를 부조와 투각 기법으로 대나무 조각에 구현한 대나무 조각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자딩 대나무 조각은 중국 전통예술의 하나로 서예, 회화, 시, 조각 등 다양한 예술을 대나무에 구현한 독창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초 사회의 변화로 쇠퇴하게 되었던 것을 1949년 중공 수립 후 쟈딩 정부의 노력으로 되살아나고, 2006년 쟈딩 대나무 조각이 중국 국무원의 국가 보호 무형 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박물관 내 전시품 대다수는 명청 때의 것으로 필통, 인물상, 술잔, 향통, 담배 흥입용 병, 지팡이, 부채, 죽간 등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한 작품들이 대다수다.

 

그중 필통에는 산수, 인물, 전신 초상, 수목, 화초, 정물을 비롯해서 삼국지의  고사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담았고, 음각, 양각, 투각 등 다양한 조각 기법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죽각품 제작 도구, 조각 과정, 조각 기법 등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죽각 작품이 어떻게 완성되는지 이해를 돕고 있다.

 

청나라 때의 동방삭, 버펄로 등을 담은 죽각 작품들은 대나무로 만들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정교함과 예술성이 돋보인다. 청나라 때 이전과 달리 진열관 한쪽 면을 차지하고 있는 푸릇 노릇한 대나무 색깔이 남아 있는 당대(当代) 작품들이 전통 계승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 현대는 1919년 5·4 운동 ~ 1949년 신 중국 수립한 때까지로 중국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중국의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역사에 등장한 시기이며, 당대는 1949년 신 중국 성립 ~ 지금까지의 시기로 인민이 주인이 된 시기다. <@바이두(百度)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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