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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딩, 상하이 들춰보기(II)

라오짱(老張) 2024. 9. 18. 14:35

치우샤푸(秋霞圃)
수로 위에 걸린 아치형 돌다리 더푸교(德富桥)를 건넜다. 지붕보다 높이를 한껏 추켜올리고 계단식 흰색 외벽에 기와를 얹은 멋들어진 건물이 돌다리와 어우러져 강남 지방의 전형적인 풍치를 그려내고 있다.
 
저우챠오 노가(州桥老街)를 가로질러 직선거리 오백여 미터쯤에 자리한 치우샤푸(秋霞圃)로 걸음을 옮긴다. 치우샤푸는 명나라 때인 1502년에 건설된 500여 년 역사를 지닌 고전 원림으로 정원 내 건축물 대부분이 명나라의 것이고 읍묘(邑庙)는 송나라 때 건립되었다고 한다.
 
치우샤푸(秋霞圃)는 주이바이츠(醉白池), 위위엔(豫园), 구이위엔(古漪园), 취수이위엔(曲水园)과 함께 상하이 5대 고전 원림이라 불린다.
 
공(龚), 심(沈), 김(金) 세 성씨의 정원과 읍묘(城隍庙)가 합쳐져 조성된 치우샤푸는 전체 면적이 3만여 평방미터로 축구장 네 개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규모이다. 그 경내는 도화담(桃花潭), 응하각(凝霞阁), 청경당(清镜塘), 읍묘(邑庙; 城隍庙) 등 네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치우샤푸 남문으로 들어서면 성황묘가 맞이한다. 향연 자욱한 성황묘 안팎을 들러보고 그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응하각 경구가 나온다. 성황묘 뒤쪽 담벼락을 지나서 조성한 비석 회랑을 따라가노라니 온갖 나무들이 꽃을 활짝 피운 수목 사이를 각종 새들은 오가며 잔칫날인 듯 떠들썩하게 지저귄다.

치우샤푸 입구와 성황묘

응하각 경구(景区)에는 태호석으로 쌓은 병산(屏山)을 중심으로 료엄당(聊淹堂), 유빙당(游聘堂), 동헌(彤轩), 역시헌(亦是轩), 부소당(扶疏堂), 환취헌(环翠轩), 멱구랑(觅句廊), 병산당(屏山堂), 수우택(数雨宅), 한연택(闲研宅), 의의소사(依依小榭) 등이 자리한다.
 
마침 환취헌(环翠轩)에서 아래위 검정 복장의 중년 여성 구친(古琴) 연주자가 남사당패에서 줄을 타는 어름사니처럼 느릿하지만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손가락 놀림으로 곤곡(昆曲)을 연주하고 있다. 그 앞에 서서 귀와 눈을 활 열고 멋들어지게 현을 타는 연주자의 몸짓과 표정을 한동안 감상했다.
 
그 옆 수우택(数雨宅) 현판이 걸린 작은 방은 각종 기왓장을 쌓아 놓았고, 한연택(闲研宅)에는 짚세기 공예품을 진열해 놓았다.
 
도화담 경구(景区)는 연못의 북쪽 주청(主厅)이자 연회 장소였던 벽오헌(碧梧轩)을 비롯해서 만향거(晚香居), 제하각(霁霞阁), 지상초당(池上草堂), 의위청(仪慰厅), 총계헌(叢桂轩), 산정(山亭), 벽광정(碧光亭), 연록헌(延绿轩), 관수정(观水亭) 등이 자리한다.
 
도화담 연못 옆 4~5미터 높이의 가산(假山)은 인공적으로 조성되었지만 자연스러움을 담아낸 모습이 중국 강남 지역 자연산수 원림의 전형을 보여 준다.
 
두보의 시 <추흥(秋興)> 8수 가운데 여덟 번째 시의 한 구절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 벽오헌(碧梧軒)은 장방형 연못의 긴 횡축을 마주하고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앞쪽에 가산과 연못을 마주하고 있어 '산관담영관(山光谭影馆)'라고도 불리는 벽오헌은 1983년 국방부장 장아이핑(张爱萍)이 썼다는 편액 속 글자 "호교장춘(壶嶠長春)"처럼 햇살이 한나절 내내 오랫동안 머물지 싶다.
 
향미는 앵무새가 쪼다 남긴 것이고
오동은 봉황이 깃드는 새 나이 들었네
香稻啄餘鸚鵡粒 碧梧棲老鳳凰枝
_두보 <秋興> 중 일부
 
자그마한 연록헌(延绿轩)은 이름 그대로 바로 앞 가산의 초록빛 초목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총계헌(叢桂轩)은 느릿느릿 다가오는 봄을 어서 오라며 확 끌어안으려는 듯 삼면 문틀을 활짝 열어젖혀 놓았다.
 
연못을 치고 들어 나앉은 벽광정(碧光亭)은 연못 건너편 가산과 좌우 건물 등 삼면이 트여 있어 시야가 넓다. 배면 양쪽에 걸린 주련은 굵은 대나무에 글을 쓴 것으로 강남 원림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난간 앞에서 물고기를 보고, 정자에서 시를 읊으며 달을 감상하네(栏前观荷数鱼 亭中吟诗赏月)"라는 주련 글귀가 이 정자에 딱 어울린다.
 
이처럼 고전 원림에는 산, 바위, 수목, 연못 등 인위적 자연과 당, 정, 각, 청 등 인공적 건조물에 대련, 명판, 서예와 그림, 비문 등에 당시 사람들의 문학, 철학, 이상 등 정신을 담아 강남 문화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흰색 벽이 기와를 얹은 담장으로 난 아치형 문을 지나 정원 북쪽의 칭징탕(清镜塘) 경구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삼은당(三隐堂), 유운거(柳云居), 추수헌(秋水轩), 청헌(清轩), 청송령(青松岭), 세한정(岁寒亭), 보정(补亭) 등이 건물들이 널찍한 거리를 두고 자리한다.
 
너른 연못을 낀 넓은 정원에 홍매화, 목련 등 온갖 꽃이 봉오리를 펼쳤고, 우거진 수목 사이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는 단체로 나드리 나온 아주머니들의 수다와 어우러져 호들갑스럽게 들린다. 마치 복잡한 세상과는 멀리 떨어진 자연 속을 거니는 기분마저 든다. 꽃, 연못, 새소리, 수다소리 등에 둘러싸여 정원을 한동안 거닐다가 원림 후문과 연결된 쟈딩박물관(嘉定博物馆)으로 발길을 돌린다.

쟈딩박물관
박물관의 '해양에서 육지로'라는 표제의 전시 구역은 1만 년 전 빙하기 끝 해수면 상승기로 시작하여, 5500~2000년 전 장강의 모래가 쌓이기 시작한 때로부터 1700년 전 기본 지형 형성기까지의 쟈딩 지역 지형변화를 보여 준다.
 
아울러 아시아 코끼리 상아, 바다거북 화석, 사슴뿔 화석, 조개 화석, 코끼리 어금니뼈 등 쟈딩에서 발굴된 동물 화석들에 대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강이 바다로 유입되는 장강 하구의 옛 생태를 짐작할 수 있다.
 
상나라 때의 골제 화폐, 춘추시대 종 악기, 전국시대 청동창과 도기, 한나라 때의 채색도기, 식기, 우물 테두리, 진한 수당 때의 동전, 서한 시대의 동경, 수당 때의 도기와 당삼채, 서진과 남북조 시대의 자기 그릇 등이 소개되고 있다. 중국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시간의 아우라는 여타 박물관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중에서 송나라 말기 쟈딩현 책임자 고연손(高衍孙, 1174-1252)이 독자적으로 발행하여 통용하였다는  '쟈딩통보라'는 화폐에 대한 자료가 눈길을 끈다. 그 얼마 후 원나라 때인 1289년 쟈딩의 가구 수가 9.6만 호, 인구가 37.4만 명에 달했고, 1296년에는 현에서 주(州)로 승격되었다고 하니 당시 번성했던 쟈딩의 위상을 말해준다.
 
박물관 2층은 '쟈딩 풍모' 주제관으로 수로와 성에 둘러싸인 1940년대 쟈딩현의 축소 모형도를 비롯해서 옛 주민들의 생활상, 민속문화, 세시풍속 등을 전시하고 있다. 지하 1층에는 최근에 창작된 죽각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유서 깊은 전통 예술의 맥을 잘 이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우챠오 노가의 북단 보러로(博乐路)에 접한 박물관 정문 쪽으로 나섰다. 헝리(横沥) 수로변에 접한 골목의 중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들고 500여 미터 거리에 있는 문묘와 후이롱탄(汇龙潭) 공원을 한바퀴 훑어 보았다.
 
본격적인 봄에 앞서 반짝 햇볕 좋은 따사로운 봄날 호사로운 나들이를 접고 귀로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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