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밖으로
금년 들어 두 번째로 맞는 주말이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저장성 쟈싱시 시탕(西塘) 구쩐으로 차를 몰았다. 어제부터 내리던 비는 그치질 않는다. 상하이와 충칭을 잇는 후위(沪渝)와 상하이 푸동-쟈싱-후저우를 잇는 션쟈후(申嘉湖) 고속도로를 갈아타며 목적지로 향한다.
빌딩 숲이 차지한 도심을 벗어나자 거칠 것 하나 없이 너른 평원의 초목과 흰 벽에 붉은 지붕의 낮은 주택들이 목가적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비에 젖은 무거운 공기는 하늘과 땅 사이 공간을 무채색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도로변에 겹겹 오선지를 걸쳐 놓은 듯 전깃줄을 걸치고 늘어선 거대한 송전탑들은 북유럽 전설 속의 몬스터 트롤(Troll)이 심술굿은 장난을 치려고 줄지어서 어디론가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비 오는 날에 구쩐을 둘러보는 것은 특별한 운치가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금강산이 계절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것처럼 구쩐도 낮과 밤, 여름과 겨울, 맑은 날과 흐린 날, 또는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에는 평소와는 다른 독특한 운치를 뽐낼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여만에 70여 km를 달려 톨게이트로 내려서자 곧게 뻗은 너른 도로가 시탕 구쩐 풍경구(西塘古镇景区)까지 안내한다.
풍경구는 95위엔짜리 입장권을 끊어야 출입구를 통해 들어갈 수 있는데, 입장권 한 장만 있으면 구쩐 안에 있는 박물관 등 여러 명소에 입장할 수 있다. 고대 오월 문화의 발상지 중 하나이자 강남 6대 수향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이곳 시탕 구쩐의 면적은 약 80 km²로 규모가 주변 여러 구쩐들을 압도한다.
남쪽 중앙에 자리한 출입구로 들어서서 곧게 뻗은 수로를 따라 구쩐의 북쪽 끝 와룡교(卧龙桥) 쪽으로 향한다.
수로를 낀 연우장랑(烟雨长廊)을 따라 들어서서 북책가로 들어섰다. 장랑은 남북책(南北栅) 등 수로를 마주한 상가 골목에 벽돌과 목재로 지은 폭 2-2.5m, 길이 1km의 거리다. 햇빛을 차단하고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한 젊은 과부가 운영하던 음식가게 앞 도로에 지붕을 얹은 것에서 시작되었다는 장랑은 강남 수향 가운데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볼거리이다. 마침 오늘처럼 비가 흩뿌리는 날 그 이름에 걸맞은 옛 수향의 장랑을 거니는 운치가 남다르다.
수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가옥 상점들은 대부분 문이 닫혔고, 어깨가 맞닿을 듯 좁은 길 입구 담벼락마다 객잔 명패들은 언제 올지 모를 관광객들을 말없이 기다리고 있다. 수로 위 안태교(安泰桥)는 네덜란드 어느 농촌 마을을 그린 풍경화 속 운하 위에 걸린 도개교를 닮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물 위에 내려앉아 어른거리는 모습이 한 편의 그림이다.
술 문화 박물관
음력 9월 9일 중양절날 등고(登高) 풍속의 현장이었을 최북단 와룡교에서 먼저 수로의 동편으로 건너가서 둘러보기로 한다. 오봉선 부두(码头)를 앞에 두고 '술 문화(酒文化) 박물관'이 자리한다. 박물관은 단층짜리 전통 가옥에 동기(铜器), 도기(陶器), 자기(瓷器), 진주와 보석(珍宝) 네 개의 전시실로 구획 지어져 있다.
동기(铜器) 전시실은 술병, 술잔, 술주전자, 술탱크 등 술 관련 각종 유물들을 만날 수 있는데, 주요 전시품들에 대한 설명을 살펴보았다.
서주(西周) 시대 청동제 솥과 술병 및 양머리 모양 장식의 청동제 술잔, 1993년 정저우(郑州) 골동품 시장에서 수집한 한나라 시기 청동제 술병, 춘추시기 청동제 술잔, 청나라 때의 술병, 1979년 시안(西安) 골동품시장에서 수집한 송대 후기의 술병, 전국시기 술통과 보온 술탱크, 샨시 바오지(宝鸡) 지역에서 출토된 한대의 호랑이 장식 뚜껑의 술병, 송대 불교용 정병(净瓶), 1984년 구이저우 준이(遵义)에서 수집된 소머리 모양 기단의 술잔, 춘추 말기와 송대 특유의 풍격을 지닌 술 주전자, 1986년 내몽고 쭤치(左旗) 지역에서 수집된 청대(清代) 동제 마유주 동아리(马奶酒铜罐),...
수집 시기와 장소, 제작 시기 등이 적힌 설명문과 함께 수 천, 수 백 년 세월을 뛰어넘어 온전한 형태로 전시대를 채우고 있는 유물들이 절로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더 안쪽에 자리한 자기(瓷器) 전시실에는 복과 장수를 상징하는 문양 등 각종 문양을 새긴 크고 작은 술 단지, 백자 및 청화 자기 술병, 사자 문양 꼭지의 청화백자 주전자를 비롯해서 1984년 샨시 빈현(山西彬县)에서 수집한 술 증류기 등이 눈길을 끈다.
도기(陶器) 전시실에서는 북위 시기 북방민족 병사의 호기로운 모습을 담아낸 토용, 1992년 칭하이 러두(乐都)에서 수집한 인문(人文) 문양의 채색 도기, 1978년 간쑤 성 란저우에서 수집한 4656-4350년 전 등황 도기(橙黃陶), 1986년 간쑤 성 광허(广河)에서 수집한 4600년 전 도기, 몸통과 덮개에 동물 사냥하는 모습을 비롯 각종 동물과 새 등을 몸통에 아로새긴 전국시기 술통, 원형 기하학무늬의 마가요(马家窯) 문화 도기, 2022년 신장 투르판에서 수집된 거란의 귀족들이 쓰던 금은제 관, 2002년 내몽골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수집한 황금 마스크 등 특이한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지방의 수향 작은 박물관에 어떻게 이처럼 고대로부터 청나라 시대까지의 유물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을 수 있었는지 의아함과 함께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커피들의 전쟁
술 문화 박물관을 옆에 '루킨(luckin; 瑞幸; 루이싱)' 커피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샤먼에 본사를 둔 중국 최대 커피 체인 브랜드인 이 커피 원두가 IIAC(Int'l Institute of Coffee Tasters) 주관 시음 대회에서 2년 연속 금상을 수상했다니 세계인의 기호와 품질을 검증받은 셈이다.
스타벅스 차이나는 작년 9월 27일 하이화이로(海淮路) 리바오(力宝) 광장에 상하이에서 1000번째, 중국에서 6000번째 매장을 열었다고 발표했다. 바야흐로 온갖 종류의 차(茶)가 주름잡던 중국의 음료시장에 커피의 거센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2022년 9월 말 기준 중국 내 루킨의 매장 수는 7,846개로 6,000여 개 매장을 가진 '스타벅스'를 훌쩍 추월했다. 지도를 보니 이 구쩐에는 스타벅스 매장도 자리한다. 중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두 커피 기업이 일전을 불사하며 점입가경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고품질, 가성비, 편의성을 목표로 모바일과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다는 루킨 커피 브랜드 체인점이 근무처 주변 몇몇 건물에 들어서 있다. 점심을 든 후 스마트 폰으로 가까운 매장과 메뉴를 골라서 판촉 할인가로 주문한 후 테이크 아웃하는 것 또한 요즘 맛보는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구쩐의 맛
비 내리는 구쩐의 인적이 드문 골목을 둘러보자니 촬영이 끝나고 텅 빈 거대한 사극 촬영장 세트 속을 거니는 느낌이다. 지난달 방역 완화 조치 후 쓰나미처럼 밀려든 코로나19 감염의 물결이 아직도 빠져나가지 않은 탓일 것이다.
안경교(安境桥)를 건너 수로를 사이에 두고 서쪽 거리(西街)와 평행으로 난 조남태(朝南埭) 거리로 들어섰다. 문이 열린 기념품 상점에서 수로와 연우장랑(烟雨长廊) 모습을 담은 냉장고 자석 하나를 샀다. 매점 아가씨에게 석피농(石皮弄) 방향을 물어보니 가게 문 앞까지 나와 친절히 가르쳐 준다.
출출한 배를 위로할 겸 기념품점 바로 옆 자그마한 식당으로 발을 들였다. 중년 여주인에게 이 지역 특색(特色) 음식이 무어냐고 물어 '홍더우옌마이화(红豆燕麦花)'라는 음식을 주문했다. 안후이가 고향이라는 여주인이 금세 이름 그대로 국물에 순두부, 팥, 귀리 등이 든 음식을 작은 종지 그릇에 내어 온다.
뜨거운 국물이 으스스한 몸에 온기를 주고 순두부는 부드러워 입 속에서 녹고, 팥맛의 달콤함은 어디에 비길 데가 없을 듯하고, 귀리는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여주인은 가족들은 춘절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자신은 춘절 동안 관광객들로 반짝 활기를 띌지도 모를 이곳을 지키기로 했더란다.
석피농으로 직행하기 전에 지도 앱에 나오는 '시탕 기독교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건물 전면에 아치형 출입구와 아홉 개 창문을 내고 지붕에 여섯 개의 뾰족한 탑을 가진 양식이 독특하다. 안쪽에 인기척이 있어 굳게 잠겨 있는 철제 대문을 두드리니 한참만에 할머니 한 분이 문을 열어준다.
칠십 세라는 여성은 할머니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건강해 보인다. 기독교당 내부는 설교단 뒤에 벽면의 커다란 십자가 외에 아무런 장식도 없이 심플하다. 족히 2~300명을 수용할 수 있을 듯 넓은 예배석은 2003년 이 기독교당을 지을 당시 미국인 선교사의 부푼 포교의 소망을 엿보게 한다.
박물관, 또 박물관
기독교당 바로 옆에 구덕당(九德堂) 박물관이 자리한다. 강남 부호들의 전통 가옥양식 건물로 중국 옥사(玉史)를 주제로 한 종합박물관이다. 1층 전시실은 홍산문화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6천 년 동안의 옥문화의 발전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덤으로 2층에는 시기별 서화, 도자기, 잡동사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거대한 옥으로 조각한 관음보살상이 맞이한다. 전시실에는 1만 2천 년 전 구석기시대 타제 옥 공구와 장식품들을 시작으로 홍산(红山), 낭저(良诸), 안후이 릉가탄(凌家滩 BC5300-6000) 등 고대문화 유적지에서 출토된 소박한 옥기들이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제가(齐家, BC3~4000년), 용산(龙山, BC3500~4000년) 문화를 거쳐 하상주 시대로 이어지면서 예술적 아름다움이 가미된 작은 장식품 위주의 옥제품들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주 시대(BC11-7C)에는 동물 문양, 원반형, 도검형 등 다양한 옥제품들이 나타난다. 춘추전국, 한을 거쳐 한호(汉胡) 다민족 기반 당나라 시대 소품들은 열린 정치, 넓은 아량, 융성한 경제를 기반으로 소담해 보이지만 사랑스럽고 품위가 배어 있다. 인문적 풍격의 고아하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송대의 유물들은 예술성이 한층 배가되었다는 설명이다.
중국 각지의 여느 크고 작은 각종 별의별 주제의 박물관들처럼 이곳 또한 원시시대로부터 시작되는 중국 옥 문화의 긴 역사를 수박 겉핥기 식으로나마 훑어보려니 만만찮은 시간과 인내심이 소진되었다.
환수교(环秀桥)를 건너 석피농(石皮弄) 쪽으로 발을 옮긴다. 석피농은 대가족이 함께 거주하던 옛 주택 구조를 가진 명말청초(明末清初)의 건물인 왕가(王家)의 존문당(尊闻堂)과 종복당(种福堂) 사이로 난 길이 68미터의 좁은 골목이다.
길 아래 하수구 위로 두께 3cm의 216개 슬레이트를 덮었기 때문에 '석피농(石皮弄)'이라고 불리는 이 골목은 가장 넓은 곳이 1.1m, 가장 좁은 곳이 0.8m에 불과하다고 한다. 우산을 접어야만 들어설 수 있는 이 골목은 높다란 담벼락 사이로 좁고 긴 하늘을 펼치고 있어 '일선천(一線天)'이라는 별칭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 오는 날의 수묵화
명나라 때의 전형적인 강남의 대저택이었던 왕택(王宅)에는 두 개의 전시실이 자리한다. 시탕 민간건축예술 전시관에서는 담장, 지붕, 주춧돌, 천정, 창틀, 기와, 기둥, 목각, 장식 조각 등 지역 전통가옥 건축기법을 비롯해서 민가, 묘우, 정원, 농탕(弄堂), 장랑, 의문(仪门), 청당(厅堂) 등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시탕 평민문화 전시관에는 주거문화, 음식문화, 민간예술, 종족문화, 무형문화 등 이 지역의 다양한 문화와 풍속을 엿볼 수 있었다.
왕택과 함께 서가(西街) 거리에 나란히 자리한 서원(西园)은 명나라 때의 개인 저택 건축물로 내부에 가산, 정자, 연못 등으로 조성된 정원이 자리한다. 건물 내부는 공예미술대사인 주염자(朱念慈)의 작품들을 전시한 '부채서예 예술관', 반청 자산계급 혁명문학 단체로 1909년 쑤저우 후치우(虎丘)에서 결성된 '남사(南社)'의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는 '남사 진열관', 그리고 도장 명인 100명의 석각 인장을 전시하고 있는 '시탕 백인관(百印馆)'으로 꾸며져 있다.
건물 맨 안쪽 뒷담장 옆에 4~5미터 높이 라메이(腊梅)가 가지마다 앙증맞은 작은 꽃망울을 터트리고 만개했다. 흩뿌리는 비를 무릅쓰고 곁에 다가가서 눈을 맞추니 귀여운 노란 꽃봉오리에 빗물이 맺한 모습이 더욱 사랑스럽다.
비는 아직도 오락가락하고 오후도 절반이 지나고 있어 귀로에 오를 요량으로 서가(西街) 거리를 빠져나오려는데 '단추(纽扣) 박물관'이라는 현판이 발길을 잡는다. 진, 한, 위진남북조, 송, 명, 청, 민국 시대의 혁대 버튼, 벨트 고리, 단추 등 복장 결구 유물을 비롯해서 그 시대 의복들을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시된 유물들도 감동을 불러일으키지만, 수 천 년에 걸친 유물들을 수집하고 고증하여 한 자리에 모으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집념이 필요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지칠대로 지친 호기심은 어느새 한 번 펜을 들고 이곳을 소개하려면 제대로 해야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으로 변했다. 애초 모든 상념을 벗어던지고 옛 수향을 한적하게 거닐고자 했던 기대는 거둘 수 밖에 도리가 없게 되어 버렸다.
전시실 2층 창문을 내다보니 오밀조밀 겹칠듯 엇갈리며 이어진 지붕과 담벼락의 열린 공간, 그 사이로 뚫린 손바닥만한 하늘과 기와지붕 처마에서 그칠줄 모르고 빗줄기가 내리치고 있다.
천하제일면
시간은 흘러 오후 세 시가 훌쩍 지났다. 주차한 곳으로 거슬러 오며 오전에 구쩐으로 들어오면서 눈길이 닿았던 '천하제일면(天下第一面)'이라는 이름의 식당의 투명한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점심때가 지나서인지 손님이 없는 식당에는 이순 넘어 보이는 주인장 부부가 식탁 앞에 마주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다.
주인장에게 가게 이름에 대해 묻자, 짐짓 얼굴에 자부심과 미소를 머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곳 음식 맛이 가히 천하제일이다"라고 하여 그렇게 지었다고 대답한다. 이곳이 고향으로 1980년부터 강산이 족히 네 번은 바뀌었을 동안 식당을 이어왔다고 하니 '맛'에 일가(一家)를 이룰 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가복(全家福), 홍삼선(红三鲜) 등 이 지역 별미(特色面) 가운데 4천 원 남짓 하는 찰육폭어면(扎肉爆魚面; 쟈러우바오위미엔) 한 그릇을 주문했다. 식탁 네댓 개가 놓인 식당 홀과 비슷한 넓이의 주방에서 주인 부부가 함께 주문한 국수 한 그릇을 만들어서 금세 내어온다.
육수에 직화 훈제한 오리 가슴살 한 조각과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 낸 생선 한 토막을 칼국수에 얹었다. 육수의 맛은 깊고 구수하고 칼국수는 툭툭 끊기며 씹히는 맛이 있다. 어육(鱼肉) 각 한 조각씩이야말로 이 음식의 맛을 오래도록 기억케 할 요소로 술로 비유하자면 풀한 바디감의 레드 와인이나 오크향 강한 하일랜드 위스키를 연상케 한다.
식당을 나서며 주인장 부부에게 과연 천하제일답다는 칭찬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워 주었다. 이 음식점을 비롯해서 시탕 구쩐에서 받은 인상은 중국 대륙 곳곳 허다한 '천하제일' 못지않은 남다른 감동으로 오래도록 남지 싶다. 겨울비 치고는 끈기 있게 내리는 빗 속으로 차를 몰아 상하이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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