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이다. 하이룬로(海伦路)에 있는 '상하이 둬룬 현대미술관(上海多伦现代美术馆)'으로 향했다. 여느 주말처럼 지하철은 승객이 적지 않다. 예원(豫园) 역에서 일단의 노인들이 우루루 몰려 타자 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 승객들이 하나둘 슬며시 일어나 자리를 내어준다.
하이룬로(海伦路) 역 5번 출구 뒤쪽 담장으로 둘러싸인 너른 지역을 곳곳에서 보안들이 포위하듯 지키고 있다. 썬이모 구거(沈尹默 旧居)라는 명패가 붙어 있는 옛 집도 굳게 닫혀 있다.
들고나는 출입구의 철책 문이 모두 잠겨 있고 그 앞에서 보안(保安)들이 무료한 표정으로 사람들의 출입을 단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철거를 앞두고 있는 구역인 듯 보인다. 새 것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사람이나 건물이나 시대나 매 한 가지인가 보다.
창춘로(长春路)에 접한 바둑판처럼 구획진 위칭팡(余庆坊) 빌라촌을 관통해서 쓰촨 북로(四川北路) 쪽으로 빠져나왔다. 도로는 차량으로 혼잡하고 노변을 따라 늘어선 상가 주변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오리나 닭 훈제 가게 앞이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3일간의 새해 연휴 동안 가족들과 마주 앉아 나누어 먹을 음식을 준비하려는 것일 터이다.
길 건너편에 보이는 '둬룬로 문화 명인가(多伦路文化名人街)'라 적힌 아치형 게이트가 눈에 들어온다. 게이트로 들어서면 좌측에 3층 높이 아담한 미술관이 있어 위챗으로 현장 예약을 하고 건강코드 확인 등 절차를 거쳐 안으로 들어섰다.
온갖 잡동사니들을 얽어 매어 거대한 곤충이나 비행체를 닮은 모양새의 금빛 조형물이 1층 너른 홀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칸막이로 구분된 벽면 쪽 탁자 위에는 2005년부터 2020년도까지 연도별 <중국 당대 예술 연감>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중 한 권을 들춰보니 연감을 한 페이지마다 하루씩의 전시 기록을 담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어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선형 계단을 통하여 차례로 2~3층으로 오르며 낮은 천정의 아담한 전시실들을 둘러보았다. 기술과 시험(科技与试验), 사회 응변(社会应变), 관념 제시(观念呈示) 등의 주제가 붙은 2층의 테마별 전시 공간의 작품들은 작가들이 작품 속에 무엇을 표현하고자 의도했는지 알쏭달쏭하여 고개만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나마 '그림의 확장(繪畫的 擴展)' 주제의 전시실에서 팡리쥔(方力鈞, 1963 허베이 生)의 <2020 疫>과 리우칭허(刘庆和, 1961 텐진 生)의 <深水> 등 60년대생 작가들의 작품 몇 점들이 난해한 당대 미술가들 작품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을 만나듯 반갑게 맞아 준다.
설치미술과 사진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 3층은 분양주택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는 느낌이 든다. 여러 작품들 중에서 체스판 무늬의 길쭉한 식탁 위 한쪽엔 온갖 종류의 빵과 케이크, 다른 한쪽엔 만터우(馒头) 미엔빠오(面包) 쫑즈(粽子) 미엔(面) 등을 진열한 설치 작품이 눈에 띈다. 같은 식탁 위에 함께 올라온 동서양 음식이 서로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어색해 보인다. 국가건 개인이 건 저 식탁 위의 빵과 만두처럼 각기 자신만이 가진 정체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왕위양(王郁洋)의 <관계(关系)>라는 작품은 형광등 20여 개를 전선으로 서로 연결하여 점멸토록 바닥에 배치한 작품이다. 3층 전시실 하나 작은 공간 전체를 다 차지하고 거기다가 윙윙 소음까지 발산하고 있어 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어떤 '관계'를 표현하려 했을까 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을 통해 "중국의 풍부한 전통과의 연결과 소통을 통해 전통 요소와 장르를 건설적이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창작한다."라는 설명대로 작품들 속에 담긴 중국 당대 예술가들의 의도를 살짝 엿본 좋은 기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을 뒤로하고 둬룬로(多轮路) 문화 명인가(文化名人街) 거리를 따라 걸었다. 미술관 건너편에 루쉰(1881-1936)이 몇몇 작가들과 둘러앉아 토론을 하는 조각상이 눈에 띄었다. 그는 1927년 10월 상하이로 옮겨와서 세상을 뜰 때까지 머물렀다고 한다. 이곳에서 멀지않은 루쉰공원에 그의 무덤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미술관 옆 문화운동가이자 문학가였던 마오뚠(茅盾, 1896-1981)의 입상을 비롯해서, 혁명 문학가요 시인이었던 펑쉐펑(冯雪峰, 1903-76), 문화운동가이자 시인이요 서예가였던 썬인모(沈尹墨, 1883-1971), 여류 작가이자 사회활동가였던 딩링(丁玲, 1904-86), 작가이자 교육자였던 예성타오(叶圣陶, 1894-1988), 공산주의 이론가였던 취치우바이(瞿秋白, 1899-1935), 루쉰의 일본인 친구로 우치야마 서점을 운영했던 우치야마 칸조우(内山完造,1885-1959) 등의 동상들이 둬룬로를 따라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동강만로(东江湾路)에 접한 명인가 북문 쪽 100여 미터 거리 양편에는 서화점과 골동품점 등이 연이어 자리하고 있다. 그중 한 화실에서는 아이들 두 명과 노화가 한 분이 나란히 않아서 각기 캔버스에 시선을 고정하고 스케치에 집중하고 있다.
지나왔던 거리를 되짚어서 미술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술관 옆 1925년에 중국 궁전 빌딩으로 건축된 교회 홍더탕(鸿德堂)의 아치형 정문 둘레는 크리스마스 때 치장했을 트리 장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침 교회당 측면 문이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죗값을 치르고 출옥한 장발장이 세상의 따돌림에 쫓겨 성당으로 숨어들듯 열린 문을 슬며시 밀치고 어두컴컴한 교회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긴 벤치가 좌우로 줄지어 놓인 장방형의 너른 교회당 내부는 별다른 장식이 없이 심플해 보이고 흰색 벽면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좌우 벽면 높이 달린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 성화들이 밖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에 강렬한 색채를 어두운 실내로 드리운다. 벤치에 몸을 앉히고 잠시 두 손을 모았다.
명인가 동문으로 나와 쓰촨 북로(四川北路)를 거쳐 전철역으로 길을 잡았다. 출출해진 배가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고 불만이다. 수따샤(蜀大俠) 건물 1층 가게 열 개 정도가 전부인 자그마한 식당가(老上海风情美食)로 들어갔다. '탕선생(汤先生)'이라는 식당에서 '바왕화(霸王花)'라는 광동 지방 음식을 한 그릇 시켰다. 닭다리 하나가 든 뜨겁고 맑간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한기로 굳어진 몸의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가을이 되어 건조해지면 광동 사람들은 선인장과 다년생 식물인 패왕화 꽃으로 탕을 끓여서 먹어 기침을 멈추게 하고 폐를 따뜻하게 한다고 하니 이런 날씨에 제격인 음식인 셈이다.
전 세계 각국의 음식은 물론이고 중국 전역 각지방의 음식들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을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상하이에서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 중 하나다.
식당가 안에는 등리쥔의 노래 <텐미미(甜蜜蜜)>가 포근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듯 감미롭게 울려 퍼지고 거리엔 행인들과 함께 임인년 새해 첫날 오후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중국의 시대구분
근대 1840 아편전쟁~1919
현대 1919. 5.4운동~1949
당대 1949 공산당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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