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오디세이 52

두보초당 初夏喜雨

청두(成都)에서의 마지막 날, 달콤한 잠에서 빠져나와 아침을 달게 먹었다. IBI*라는 이 숙소는 하룻밤 오만 원 남짓 숙박비에 아침까지 거저 제공하니 배낭 여행객에게 딱 걸맞은 곳이다. 날씨가 흐린 탓에 따가운 햇볕이 없어 바깥 산책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날이다.  두푸초당(杜甫草堂) 입구 맞은편 초당 광장 도로변에 자전거를 세웠다. 광장에서는 나이 지긋한 남녀 노인들이 수련복 차림으로 물 흐르는 듯 간드러진 현악 음률에 맞춰 태극권 연습이 한창이다. 중국 어느 도시를 가나 그곳 출신 옛 명사들의 동상이나 기념관 등 기념물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광장 옆 좌우에 삼소(三蘇)와 삼조(三曹)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삼소는 그렇다 하더라도 삼조 동상이 이곳에 세워진 연유는 잘 모르겠으..

깃발과 노래와 꽃

중국 강남 땅 호텔에서 격리 일주일째 날 아침을 맞는다. 굵은 빗줄기가 두르리거나 빗물이 맺혀 있던 너른 통유리창으로 오랜만에 햇빛이 들이치고 있다. 창밖 유유히 흐르는 너른 강폭의 황포강 위를 크고 작은 화물선들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TV를 켜니 CCTV를 비롯한 여러 채널에서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제4차 회의를 생중계하고 있다. 개회에 앞서 울려 퍼진 중국 국가(國歌)의 내용이 궁금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국기 국가 국화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를 뒤적여 중국의 공식적인 국가(國義歌)가 임을 알게 되었다. 이 곡은 2017.9.1일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제29차 회의에서 채택된 「중화인민공..

뜨겁고 매운 입체 도시 충칭

#충칭을 향하여 승객을 가득 채운 A320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올랐다. 비몽사몽 하는 사이 푸동공항 제2터미널을 이륙한 지 두 시간 반만인 새벽 1시 반경 충칭 쟝베이(江北) 공항 제2터미널에 안착했다. 중국 국경일 긴 연휴를 앞두고 동료 한 분과 후배 한 명 등 셋이 충칭 출행을 계획을 하고 결행을 한 것이다. 병아리처럼 길게 늘어선 노란색 자그마한 택시들이 도착 홀 밖 승강장으로 연신 들어와선 승객들을 태우고 빠져나간다. 지상과 지하를 교차하며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입체형 도로를 롤러코스트 타듯 좌우로 흔들리며 달린 작고 낡은 택시가 10여 분만에 공항 인근 호텔 부근에 도착했다. 외국인 투숙 여부를 사전에 확인하고 예약을 했지만 화위호텔(华裕酒店) 프런트 직원의 투숙 절차는 느려 터져서 피로감이..

항저우 천고의 정(千古情)

주말인 내일부터 시작되는 노동절 연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바야흐로 상하이는 거리의 가로수들이 연초록 잎을 바람에 일렁이는 황금의 계절이다. 중국의 관공서와 대부분의 기업들은 5월 1일 전후 주말에 대체근무를 하고 이번 토요일부터 5월 3일까지 5일간의 연휴에 들어간다. 우리 사무실은 월요일인 5월 1일까지 3일간의 연휴가 기다리고 있다. 노동절 연휴를 일주일 가량 앞두고 '취날(去哪儿)', '티에루(铁路)12306' 등 교통편 예매 어플을 검색해 보니, 중국 각지로 출발하는 항공권이나 기차표는 일찌감치 매진되었거나 값이 오를 대로 치솟았다. 심지어 항저우나 쑤저우 등 지척에 있는 도시로 가는 기차표도 동이 나고 없는 형편이다. 평소 '자유분방한 영혼'이라 자처하던 터라 패키지여행을 해 본 적이 거의..

푸동 상하이 미술관 기행

동지가 지나고 계절이 겨울의 깊은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상하이 아파트의 난방이 시답잖아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요가 요긴하다. 당직 근무를 인계하러 근무일지와 매뉴얼이 든 가방을 둘러메고 아파트를 나섰다. 싸늘한 공기가 상하이에도 이제 겨울이 왔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정원의 큰 은행나무 한 그루는 며칠 전까지 가지마다 무성히 달고 있던 황금빛 잎사귀들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거리의 행인들은 모두 두터운 외투 차림이고 휴일 아침이면 눈에 많이 띄던 조깅족들 모습도 뜸하다. 아파트와 상점들이 줄지어 선 약 1km 길이의 황금성도(黄金城道) 보도의 공터마다 나이 지긋한 주민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건강 체조에 여념이 없다. 당직 가방을 다음 근무자에게 넘겨주고 가까이에 있는 홍바..

천진한 그림의 세계, 중국 농민화(农民画)

가을의 한가운데 주말이다. 한 시간 가량 차를 몰아 상하이에서 서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진샨(金山) 농민화 촌에 닿았다. 안내도를 보니 농민화 촌은 축구장 서너 개 크기 면적에 '중국 농민화 박람원'과 '단청인가(丹青人家)'라 불리는 농민화가 화랑 열다섯 채가 수로를 끼고 자리하고 있는 단출한 마을이다. 농민화의 기원은 사원의 종교화, 주택 장식 민속화 등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신 중국 수립 후 1950년대 말에 미술 장르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샨 농민화에 대해 바이두(百度) 백과 등에 소개된 설명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하이 진샨 농민화는 진샨현 문화관에서 20여 명이 농민화 동아리를 조직하여 전문적인 창작 활동에 종사함으로써 국내외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

영혼이 손뼉치고 노래하는 노인들의 나라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가 카드 게임이다. 옛 골목을 지날 때면 서민들이 사는 집 열린 문 사이로 가족이나 이웃들끼리 모여 앉아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의 화투 놀이는 명절 등 특별한 날 집 안에서 가족들끼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중국인들은 공원, 집 앞 공터, 식당 등 장소나 때를 불문하고 카드놀이를 즐긴다. 예전 일이긴 하지만 중국 어느 공항의 국내선 출발 대기실 바닥에 모여 앉아서 떠들썩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카드놀이를 하던 중국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주 상하이 센샤로(仙霞路)의 어느 국숫집에서 점심을 들고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을 한 바퀴 산책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근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보이는 남녀 노인 몇 분이서 공원 내 정자의 탁자 둘레에 모여..

불교성지 아미산과 낙산대불, 자비의 바다

청두(成都)에서의 이튿날이다. 5시쯤 달콤한 잠에서 깨어 서둘러 세수를 하고 배낭을 집어 들고 호텔을 나섰다. 오늘의 행선지는 청두에서 남쪽으로 120km여 떨어져 있는 아미산과 그 옆 낙산대불이다. 택시를 불러 청두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 모두 네 개가 있다는 기차역 중 남역으로 향했다. 어제 진리(金里)를 둘러본 후 10호선 지하철 연장 공사가 한창인 도로를 따라 늘어선 여행사 사무실 여러 곳을 들러서 물어보았지만, 하나같이 정부 시책에 따라 외국인 투어객은 받질 않는다는 대답만 돌아왔었다. 일일 패키지 투어가 여러 면에서 편하겠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직접 다녀오는 수밖엔 도리가 없어, 청두 남역-아미산 구간 기차표와 낙산-청두 구간 기차표를 각각 예매해 두었었다. 5:40경 남역에 도착하니 너른 ..

뤄양(낙양; 洛陽) 박물관은 뭔가 다르고 특별하다

중국 7대 고도(古都) 중 하나인 뤄양(낙양; 洛陽)에서의 출행 마지막 날이다. 밤새 여러 번 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이곳의 오늘 날씨는 최저 기온 8도 최고 기온 14도로 예보되었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가 지나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 머지않았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뤄양행을 생각하면서 일견 가장 먼저 찾아보아야 할 곳으로 생각한 곳은 뤄양 박물관이었다. 중원의 13조 고도 유구한 역사가 남긴 위대한 문물의 발자취를 한 곳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획이 뒤틀리고 여정이 꼬여서 박물관을 둘러볼 시간은 이번 출행의 마지막 날, 그것도 반나절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하고 걸음이 바빠진 까닭이다. 여덟 시 반경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포스터 속 중국 현대 정치사

청명절(淸明節)이다.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절기답게 추위가 온전히 물러나고 천지에 생기가 가득한 봄날씨다. 집을 나서 신홍교중심화원(新虹桥中心花园) 공원을 가로질러 건널목을 건너니 71번 전차가 신호등을 기다리며 정차해 있다. 중국에선 청명절은 공휴일이라 집에서 멀지 않은 옌안시로(延安西路) 726호에 위치한 '상하이 양배명 선전화예술수장관(上海杨培明宣传画艺术收藏馆, Shanghai Propaganda Poster Art Centre)'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이 수장관은 상하이 출신 양페이밍이 1995년부터 수집한 정치선전 포스터를 전시하기 위해 개인이 설립한 공간인데, 트립 어드바이저가 상하이 즐길거리 1,367개 중 7위에 랭킹 했고, 2014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모 국제 관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