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30

푸동 상하이 미술관 기행

동지가 지나고 계절이 겨울의 깊은 골짜기로 접어들었다. 상하이 아파트의 난방이 시답잖아 한국에서 가져온 전기요가 요긴하다. 당직 근무를 인계하러 근무일지와 매뉴얼이 든 가방을 둘러메고 아파트를 나섰다. 싸늘한 공기가 상하이에도 이제 겨울이 왔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정원의 큰 은행나무 한 그루는 며칠 전까지 가지마다 무성히 달고 있던 황금빛 잎사귀들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다. 거리의 행인들은 모두 두터운 외투 차림이고 휴일 아침이면 눈에 많이 띄던 조깅족들 모습도 뜸하다. 아파트와 상점들이 줄지어 선 약 1km 길이의 황금성도(黄金城道) 보도의 공터마다 나이 지긋한 주민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건강 체조에 여념이 없다. 당직 가방을 다음 근무자에게 넘겨주고 가까이에 있는 홍바..

천진한 그림의 세계, 중국 농민화(农民画)

가을의 한가운데 주말이다. 한 시간 가량 차를 몰아 상하이에서 서남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진샨(金山) 농민화 촌에 닿았다. 안내도를 보니 농민화 촌은 축구장 서너 개 크기 면적에 '중국 농민화 박람원'과 '단청인가(丹青人家)'라 불리는 농민화가 화랑 열다섯 채가 수로를 끼고 자리하고 있는 단출한 마을이다. 농민화의 기원은 사원의 종교화, 주택 장식 민속화 등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신 중국 수립 후 1950년대 말에 미술 장르의 하나로 확고히 자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샨 농민화에 대해 바이두(百度) 백과 등에 소개된 설명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상하이 진샨 농민화는 진샨현 문화관에서 20여 명이 농민화 동아리를 조직하여 전문적인 창작 활동에 종사함으로써 국내외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

영혼이 손뼉치고 노래하는 노인들의 나라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가 카드 게임이다. 옛 골목을 지날 때면 서민들이 사는 집 열린 문 사이로 가족이나 이웃들끼리 모여 앉아 카드놀이를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의 화투 놀이는 명절 등 특별한 날 집 안에서 가족들끼리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중국인들은 공원, 집 앞 공터, 식당 등 장소나 때를 불문하고 카드놀이를 즐긴다. 예전 일이긴 하지만 중국 어느 공항의 국내선 출발 대기실 바닥에 모여 앉아서 떠들썩한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카드놀이를 하던 중국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주 상하이 센샤로(仙霞路)의 어느 국숫집에서 점심을 들고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을 한 바퀴 산책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근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보이는 남녀 노인 몇 분이서 공원 내 정자의 탁자 둘레에 모여..

포스터 속 중국 현대 정치사

청명절(淸明節)이다. '부지깽이를 꽂아도 싹이 난다'는 절기답게 추위가 온전히 물러나고 천지에 생기가 가득한 봄날씨다. 집을 나서 신홍교중심화원(新虹桥中心花园) 공원을 가로질러 건널목을 건너니 71번 전차가 신호등을 기다리며 정차해 있다. 중국에선 청명절은 공휴일이라 집에서 멀지 않은 옌안시로(延安西路) 726호에 위치한 '상하이 양배명 선전화예술수장관(上海杨培明宣传画艺术收藏馆, Shanghai Propaganda Poster Art Centre)'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이 수장관은 상하이 출신 양페이밍이 1995년부터 수집한 정치선전 포스터를 전시하기 위해 개인이 설립한 공간인데, 트립 어드바이저가 상하이 즐길거리 1,367개 중 7위에 랭킹 했고, 2014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모 국제 관광 ..

상하이 월드 엑스포 박물관

상하이 세계박람회 박물관(世博會博物館; World Expo Museum)을 찾아보기로 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휴일이고 토요일을 집에서 미적거리며 허비한 터라 일요일만은 보람 있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10호선과 13호선을 갈아타며 목적지로 향했다. 전철 안은 한적하고 좋은 햇살 아래 움츠렸던 어깨를 한껏 펴고 걷는 길거리 사람들 걸음이 한가롭고 느긋하다.   상하이 황푸구 몽쯔로(蒙自路)에 위치한 상하이 엑스포 박물관은 2017년 5월 1일에 개관했는데 부지 4헥타르, 연건평 4만 6,534㎡, 건물 높이 34.8m의 지상 6층, 지하 1층으로 규모가 상당하다. 전 세계 엑스포를 전면적으로 소개하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으로 2021년 기준 총 18,957점의 소장품과 315점..

중국의 국모 쑹칭링(송경령; 宋庆龄)

찬란한 상하이의 봄이 머지 않았다. 집에서 지척 거리인 쑹칭링 릉원(陵園)을 찾았다. 경비원이 지키고 있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코로나19 음성 확인 큐알코드인 '젠캉마(健康码) 검사 등 아무런 절차도 없이 입구를 들어섰다. 상하이시 만국공묘이던 이곳은 1984년 쑹칭링 능원으로 변경 조성되었다고 한다. 이곳엔 쑹칭링과 그녀의 부모를 모신 송 씨 묘원, 외적인(外籍人) 묘원, 명인 묘원 등 묘역과 함께, 쑹칭링 기념관, 상하이 아동박물관 등이 들어서 있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외적인 묘원, 송 씨 묘원, 명인 묘원 순서로 둘러보기로 했다. 외적인 묘원은 1970년대 외무부 지시로 건립되었으며 중국에 큰 공헌을 한 외국 저명인사 640여 명이 잠들어 있다. 안쪽 가장자리에 서있는 비석 하나가 지금..

성진국(性進國) 중국의 일면

일요일 당직 근무를 인계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사무실 인근 상해 세계 무역 전시관(上海世贸展馆)에서 열리고 있는 '제18회 상하이 국제 Adult-care Expo 2021'이 눈에 띄어 호기심이 발동했다. 위챗으로 QR 코드를 읽어 들여 인적사항을 입력하고 연동된 알리페이로 입장료 50원을 지불하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제18회 중국 국제 성인보건 생식건강 전람회(第18 中国国际成人保健及生殖健康展览会)'라는 타이틀에서 이 전시회가 18번째 개최되는 국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알고 보니 업계 관람일인 4.16일에 이어 일반인 대상으로 4.17-18일 양일간 행사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2004년부터 시작된 이 전시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인용품 전시회로 지난 17회까지 360여 개 기업의 ..

상하이의 명동 난징루 보행가 거리

날 좋은 봄날 저녁이다. 일찌감치 저녁을 들고 산책 삼아 밖으로 나섰다. 전철 10호선을 타고 난징동루(南京东路) 역에서 내려 6번 출구 닝보루(宁波路) 쪽으로 나와서 난징루 보행가(步行街) 거리 쪽으로 걸었다. 종으로 뻗은 허난중루(河南中路)와 횡으로 뻗은 난징동루가 교차하는 곳에서 시작하는 보행가 거리는 서쪽의 시장중루(西藏中路)까지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와이탄 쪽을 등지고 허난 중로를 건너면 보행자 거리 초입에서 상징 조형물이 맞이한다. 그 우측 항기(恒基) 빌딩 1층 미국 애플의 대형 스마트 폰 매장에는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보행가 쪽으로 낸 전면 유리창이 가시 공간을 바깥으로 확장하여 넓은 공간이 더욱 넓어 보인다. 허난중루 건너편 화웨이 매장도 크고 넓기는 마찬가지다. 그 반면, 애플..

런민(인민; 人民) 공원 봄봄

상하이 중심구 황푸구의 런민따따오(人民大道) 북쪽에 런민공원이 자리한다. 원래 그 남쪽의 런민광장과 함께 경마장이었다가 1952년 공원으로 개원하며 천이(陳毅) 당시 시장이 제명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인민공원은 상하이 이외에 청두 텐진 우루무치 옌지(延吉) 광저우 정저우 동완(东莞) 안양 난양 진양(锦阳) 등 중국 내 많은 도시에도 같은 이름의 공원이 있으니 우리나라 여느 도시의 '중앙공원'처럼 흔한 이름이다. 인터넷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 찾아보니 상해에는 150여 개의 공원이 있다. 상해 동물원, 상해 식물원, 진산 식물원, 회룡담공원 등 18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료 개방된 공원이라고 한다. 인구 24백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로 얼핏 삭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강, 운하, 공원, 녹지, 문화..

상하이의 맨하탄 와이탄(外灘)

퇴근 후 저녁을 들고 운동 삼아 와이탄(外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일상에 매여 사는 소시민에게 하루 일과를 끝내고 맞는 짧은 휴식은 더없이 푸근하다.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두 다리 쭉 펴면 고향의 안방~" 가끔씩 오래전 병영에서 부르던 군가 한 구절이 저절로 입가에 맴돌 때가 있다. 상하이에 도착 후 이곳 제일의 명소이자 야경이 일품인 와이탄을 아직 찾아보지 못했었다. 내일 비 예보에 이어 주말 날씨도 장담할 수 없으니 오늘 밤만큼 딱 좋은 날도 없을 것이다. 이리루(伊莉路) 전철역으로 걸어가서 스마트폰에 미리 깔아 놓은 전철 탑승용 어플 '따뚜후이(大都会)'를 켜고 게이트를 통과하려는데 작동이 되지 않는다. 역무원에게 도움을 받으며 한참을 씨름하다가 결국은 무인 발권기에서 휴대폰 온라인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