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오디세이

뤄양(낙양; 洛陽) 박물관은 뭔가 다르고 특별하다

라오짱(老張) 2024. 8. 23. 07:05

중국 7대 고도(古都) 중 하나인 뤄양(낙양; 洛陽)에서의 출행 마지막 날이다. 밤새 여러 번 잠에서 깨었다가 다시 잠들곤 했다. 이곳의 오늘 날씨는 최저 기온 8도 최고 기온 14도로 예보되었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가 지나고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상강(霜降)이 머지않았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뤄양행을 생각하면서 일견 가장 먼저 찾아보아야 할 곳으로 생각한 곳은 뤄양 박물관이었다. 중원의 13조 고도 유구한 역사가 남긴 위대한 문물의 발자취를 한 곳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획이 뒤틀리고 여정이 꼬여서 박물관을 둘러볼 시간은 이번 출행의 마지막 날, 그것도 반나절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마음이 초조하고 걸음이 바빠진 까닭이다.

여덟 시 반경 호텔 앞에서 택시를 타고 박물관 앞에 도착하니 아직 개관 시간인 아홉 시가 되지 않았고, 한두 명씩 관람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박물관 오른편에 높이 39미터 관광탑(观光塔)이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탑은 '천하의 중추'라는 뜻을 가진 무주 때의 '천추(天枢)'를 본뜬 것으로 꼭대기에는 4마리 용이 '불구슬'을 받쳐 올리고 있다고 한다.
 
1958년 창건된 뤄양 박물관은 '정립천하(鼎立天下)'의 설계 이념이 담긴 가마솥 형상을 닮았으며, 소장유물 40만여 점 가운데 1만 5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되어 문이 열리고 줄지어선 관람객들을 따라 박물관 안으로 들어섰다.

뤄양박물관 전시실 밖 복도와 홀 벽면에 걸린 역사(신화) 기록화

박물관 1층 너른 홀은 투명한 천정의 자연 채광과 연갈색 톤의 벽면이 화사한 느낌을 연출한다. 홀 좌우측과 뒷면의 전시공간 바깥 벽마다 한 점씩 걸린 <하 민족의 나라 경영(夏人營國)>, <북위 효문제의 천도>, <주공의 낙읍 건설(周公营建洛邑)> 등 대형 유화들이 낙양이 중국 고대 역사에서 점하고 있는 절대적 위치를 넌지시 말해준다.

낙양박물관의 하락(河洛) 문명관, 진보관(珍宝馆), 한당 도용관(汉唐陶俑馆), 당삼채관(唐三彩馆), 석각관(石刻馆), 서화관(书画馆), 왕수모란 예술관(王绣牡丹艺术馆) 등 7개 상설 전시관에 약 1만 5000점을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먼저 2층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근현대 작품 위주로 전시된 서화관에서 여러 서체의 서예와 수묵화 작품을 주마간산 격으로 훑어 보았다.

중국에서는 우리와 달리 서예를 '수파(书法)'라고 하는데, 바이두(百度) 백과사전은 수파를 "글자의 특성과 그 뜻에 맞게 서체(書體)의 필법(筆法)과 구성, 장법(章法)으로 써서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말 없는 시, 동작 없는 춤, 형상 없는 그림, 소리 없는 음악(无言的诗, 无行的舞, 无图的画, 无声的乐) 등으로도 불린단다. 일본에서는 서예를 서도(书道)라고 한다니 같은 예술 장르를 두고 달리 해석하는 동북아 3국의 독특한 세계관이 엿보인다.

상낙관(上洛馆)에는 연말까지 전시되는 특별 전시관이다. 구멍이 뚫린 병풍 가림막 뒤 벽면에 전시물을 배치하여 한껏 호기심을 유발하고, 당삼채 도자기 서너 개와 함께 백거이를 소개하고, 인물 도기 파편과 함께 그 출토지인 북위 영령사의 역사를 보여주며, 공사장 비계처럼 엮어 쌓아 올린 나무틀 위에 웨딩드레스를 입힌 마네킹을 올려놓는 등 실험 정신이 돋보인다.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전시실 디자인과 배치
 또한, 人海 _ 당삼채 인물상, 思潮 _ 괴수상 전시품, 物流 _ 서역 인물상, 낙타, 허리띠 장식 금은화 등 표제를 제시하고 그 단어에서 연상되는 유물을 함께 전시하는 기법도 재미있는 발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무채색의 백마사 사진과  컬러풀하게 현대화로 재해석하여 표현한 용문석굴을 대조적으로 배치한 것도 흥미롭다.

뤄양의 화석처럼 오랜 옛 역사 유물과 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이 시공을 뛰어넘어 함께 어우러진 상낙관의 예상 밖 파격과 독특한 큐레이션 등에 신선한 충격을 느끼며 다음 전시관으로 이동했다. 진보관(珍宝馆)은 하은주 진위 당대 유물의 진수들만 엄선해서 진열하고 있다.

당삼채관에는 망산(邙山)에서 출토된 인물상, 실크로드 관련 낙타 말 격구도,  천왕용, 묘수상 등 각종 도기와 접시 그릇 술병 베개 항아리 주전자 컵 등 생활용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옛 것을 오늘과 접목하려는 시도가 곳곳에 눈에 뛴다.

망산은 동주(東周) 이후 후당(后唐)까지 9개 왕조의 수도였던 뤄양의 북쪽에 동서로 100㎞에 걸쳐 있는 해발 300m의 산이다. 후당 이전 시대의 황제릉 24기를 비롯해 청나라 때까지 수십 만기의 무덤들은 오랜 세월로 대부분 파괴되었는데, 진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 남조와 남당의 마지막 왕 진숙보(陳叔寶)과 이욱(李煜), 서진(西晉) 사마씨(司馬氏), 당나라 시인 두보, 대서예가 안진경 등의 무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중국의 황제나 귀족들의 무덤뿐 아니라 의자왕의 셋째 아들 부여륭, 백제 부흥운동을 벌이다가 당나라에 투항한 흑치상지, 나라를 배신한 연개소문의 아들 남생과 남산 등의 묘비명도 망산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1층으로 내려와서 1관 선사 하상주(先史夏商周), 2관 춘추 한위(春秋汉魏), 3관 수당(隋唐) 등 시대별로 구분하여 전시된 청동기 묘곽 도자기 당삼채 불상 탑 등 유물들을 둘러보았다. 전시물들은 하나같이 작고 아담하지만 저마다 각 시대의 숨결을 담고 있어 하나하나 진귀하고 고결해 보인다.

뤄양 박물관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방대한 유물을 창고식으로 나열한 중국 여느 다른 도시들의 박물관들과는 자못 달랐다. 그 어느 구석에서도 허풍과 과장이 깃든 허장성세란  찾아볼 수 없는 유물들과 모던한 큐레이션 기법의 강한 인상이 진한 잔향처럼 가시질 않는다.

툭 트인 너른 중앙홀로 나왔다. 천정과 벽면 유리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이 눈부시다. 호기심에 이끌려 찬연한 옛 중국 문물의 숲 속 깊숙이 빠져들었다가 홀연히 꿈에서 깨어 나온 듯한 느낌이다.  

출행 마지막 날 반나절 짧은 시간에 쫓기듯 수박 겉핥기 식으로 둘러보고 뤄양 박물관을 나섰다. 사전에 여행 계획을 치밀하게 준비하지 못한 대가를 마음속에 이는 아쉬움으로 치를 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고도를 뒤로하고 상해행 고속열차에 올랐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