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자 오월의 마지막 날이 지나가고 있다. 창밖에서 빌딩 사이에 비집고 선 수양버들이 처녀 머리카락 같은 가늘고 긴 가지를 늘어뜨리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린다. 퇴근 무렵 잠시 3층 야외 휴게실로 나가서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빌딩 숲 위로 보드랍고 가벼운 양털 같은 구름이 비췻빛 하늘을 수놓고 있다.
들고 나는 대문이 하나이다 보니, 퇴근길에 동료를 마주치는 일이 잦다. 오늘도 대문을 나서려는데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동료 M이 차창을 내리고 옆 좌석을 내어준다. 사무실 앞에서 집까지 15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길거리 자전거(共享單車)를 타려던 참이었다.
주차장처럼 밀리는 차도 옆 자전거 전용도로 위를 페달을 밟아 바람을 맞으며 물 흐르듯 지쳐가는 맛이 그만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신문배달을 할 때며 고교 때 등하교를 할 때에도 관우의 적토마처럼 자전거는 소중하고 요긴한 존재였다.
점심 식사와는 달리 퇴근 후 저녁은 혼밥을 하는 때가 대부분이지만 햇반, 병입 김치, 김 등으로 간단히 들면 되니 요즘처럼 편한 세상도 없지 싶다. 저녁식사 후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제법 긴 자유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냉장고 속에 남아 있던 마지막 한 개 오렌지를 후식으로 들고 선선한 저녁 공기에 온몸을 맡기며 과일가게로 향했다. 몇 번 갔었던 '라오리궈수디엔(老李果蔬店)'이라는 자그마한 그 가게는 아파트에서 십여 분 거리로 이리난루(伊利南路)와 홍송동루(红松東路)가 만나는 모퉁이 2층짜리 건물 일층에 있다.
수확의 계절 가을도 아니지만 이곳 강남땅 제일의 도시 상하이 과일 가게에는 제철이 어느 때인지를 잊은 온갖 과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과 배 수박 귤 오렌지 망고스틴 파인애플 망고 포도 살구 복숭아 자두 토마토 바나나 멜론 키위 체리 리즈 黄帝柑 西梅 樱桃 枇杷... 갈 때마다 가게를 지키고 있는 여주인에게 몇몇 과일의 이름을 물어보지만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가게 안 대부분의 과일들이 쟝시(江西) 광동(廣東) 산둥(山东) 등 중국 각지에서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 과일 채소 가게(果蔬店)라는 이름처럼 이 가게에는 과일뿐 아니라 오이 애호박 완두콩 회향두 무를 비롯해서 갖가지 푸른 잎채소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다.
오늘따라 자그마한 가게가 아주머니 아저씨들로 붐빈다. 여러 과일 중에서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가는 것이 '리즈(荔枝)'라는 과일이다. 5~7월이 제철이라니 제철 과일에 손이 가기 마련일 터이다. 광동과 푸지엔 등 남쪽 지방에서 나는 과일로 얇은 껍질을 벗기고 씨앗을 감싸고 있는 육질을 과즙과 함께 입속에 넣으면 달콤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리즈는 양귀비와 서태후가 좋아했다는 과일로 십오 년 전 북경에서 살 때 아파트 뒤쪽 시장에서 많이도 사다 먹었던 기억이 있다.
리즈에 대한 문헌상 최초 자료인 서한(西漢, BC202-AD8) 사마상여의 <상림부(上林賦)>에는 "가지를 자른다"는 뜻의 '離支'라고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당나라 3대 시인의 한 사람으로 '시왕(詩王)'으로 불리는 백거이(772-846)도 "가지에서 떼면 하루 만에 색이 변하고 삼일이면 맛이 변한다."라고 했단다. 동한(東漢, 20-220) 때부터 '離支'를 '荔枝'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다른 과일들과 달리 가지째 박스에 담겨 있는 리즈를 사람들이 하나씩 따서 봉지에 담는 모습도 이해가 되었다. 오늘은 황띠깐(皇帝柑)과 잉타오(樱桃)를 한 봉지씩 샀다. 주인에게 무엇이냐고 묻자 옆에서 과일을 고르던 아주머니들이 '황허우깐(皇后柑)'이라며 농을 건다. 황띠깐은 광둥 성 사회시 정산(四會市 貞山)에서 가장 먼저 재배된 희귀 품종 귤인데, 당나라 때 재배 기록이 있고 북송(960 -1127) 때 황제에게 공물로 바쳐 공깐(貢柑)이라고도 불리는 과일이다.
다음에는 먹고 난 후 수북이 쌓이는 껍질을 수습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리즈를 조금 사볼 요량이다. 오월의 여왕 장미의 자태를 제대로 한 번 감상해 보지도 못했는데 오월은 시간의 물결 따라 훌쩍 흘러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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