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오디세이

상하이 월드 엑스포 박물관

라오짱(老張) 2024. 8. 23. 07:00

상하이 세계박람회 박물관(世博會博物館; World Expo Museum)을 찾아보기로 했다. 봄기운이 완연한 휴일이고 토요일을 집에서 미적거리며 허비한 터라 일요일만은 보람 있게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고 10호선과 13호선을 갈아타며 목적지로 향했다. 전철 안은 한적하고 좋은 햇살 아래 움츠렸던 어깨를 한껏 펴고 걷는 길거리 사람들 걸음이 한가롭고 느긋하다.  

 

상하이 황푸구 몽쯔로(蒙自路)에 위치한 상하이 엑스포 박물관은 2017년 5월 1일에 개관했는데 부지 4헥타르, 연건평 4만 6,534㎡, 건물 높이 34.8m의 지상 6층, 지하 1층으로 규모가 상당하다. 전 세계 엑스포를 전면적으로 소개하는 세계 유일의 박물관으로 2021년 기준 총 18,957점의 소장품과 315점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푸동 테마관이었다 박물관 건물은 '마을의 좁은 골목(里弄)'과 '라오후(老虎; roof의 음역) 창'의 구조에 '종이접기(折纸)' 기법을 사용하여 2차원 평면과 3차원 공간이 결합된 독특한 입체 구조를 갖고 있다. 특히, 1870년대 초에 생겨난 상하이의 대표적인 민가 건물인 석고문(石库门) 건축 양식을 반영하여 매력적이다.

 

'석고문(石庫門)'은 태평천국 봉기 당시 전란으로 인해 장쑤성, 저장성 일대 부유한 상인, 지주, 관신들이 상하이 조계로 몰려들어 대량으로 건설한 주택에 채택한 건축 양식이다.  강남 민가의 양식을 많이 흡수하여 돌로 문틀을 만들고, 검고 단단한 나무로 문짝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정문에서 큐알 코드로 입장 예약을 하고 너른 정원을 지나서 박물관 건물로 들어섰다. 박물관은 1층부터 6층까지 이동하는 동선을 따라가면서 차례로 각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

 
1851년 런던 세계박람회장 수정궁

제1전시관은 월드 스테이지로 엑스포 총람, 만국박람회, 파노라마 파리 등 3개 코너로 구성돼 있다. 1층 중앙홀에서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첫 세계 박람회인 1851년 런던 월드 엑스포를 필두로 55년 파리, 62년 런던, 67년 파리, 73년 비엔나, 76년 필라델피아 등 19세기에 개최된 박람회의 개최 연도와 도시를 표기한 세로형 긴 막대가 블라인드처럼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세기가 바뀌어 20세기에는 종합박람회와 더불어 1933년 밀란의 트리엔날레(triennale), 1936년 스톡홀름의 전문 엑스포(Specialized Expo), 그리고 90년 오사카, 99년 쿤밍의 원예 박람회와 같이 특정 주제와 테마를 가진 박람회들도 함께 개최되었다.

 

유럽에서 시작된 세계 박람회가 21세기 들어서 2006년 치앙마이, 2010년 상하이, 2012년 여수, 2019년 북경, 2020년 두바이, 2023년 도하, 2025년 개최 예정된 오사카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개최 횟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제1전시관 한가운데에는 파리 엑스포를 조명하는 대형 영상이 나오고 있다. 영상은 1855년부터 한 세기 동안 6번이나 엑스포를 개최하여 엑스포의 도시라고 해도 될법한 파리의 변화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조감도 형식 도시 전체를 조망하는 파노라마 영상이 파리의 도시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2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양쪽 벽면에는 19세기에 개최된 엑스포의 아름다운 포스터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제2전시실 주제는 '진보지로(進步之路; Moving with Progress)'로 도시변화, 과학기술 혁신, 세계여행의 3개 코너로 나뉜다. 전시관에는 1873년 비엔나로부터 1915년 샌프란스코까지 각국에서 개최된 엑스포 개최 건물과 도시 모습이 미니어처와 사진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1873년 엑스포를 개최한 비엔나의 당시 모습은 성당 첨탑 몇 개를 제외하면 높은 건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오늘날의 모습과는 완연히 다르다.

  

1880년 멜버른의 엑스포 개최지 건물은 우아함이 돋보이고, 1893년 시카고의 엑스포 행사장은 규모가 훨씬 넓어진 것이 눈에 띈다. 1910년 브뤼셀 엑스포 전시관 모형 앞에서 초등생 대여섯 명이 얘기를 주고받고 있고, 1915년 샌프란시스코 전시관 모형은 단체 관람을 온 한 무리 아이들이 빼곡히 둘러싸고 전시관을 떠들썩하게 한다.

 

제2전시관 한쪽 벽면의 진열장 속에는 엑스포별 당시 새로 발명되거나 일상화된 주요 물품의 미니어처와 설명이 아래와 같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세계박람회가 각 참가국들이 최첨단 과학과 기술력으로 만들어 낸 제품들의 경연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51 런던 : 증기기관차, 전보

1855 파리 : 텔리그라프, 색소폰, 재봉틀

1862 런던 : 세탁기, 제유기

1867 파리 : 자전거, 유압 엘리베이터, 기구(氣球)

1873 비엔나 : 발전기, 교실

1876 필라델피아 : 벨 전화기, 코리스 엔진

1878 파리 : 포노그라프, 타자기.

1888 바르셀로나 : 백열전구, 손전등

1889 파리 : 자동차, 전차

1893 시카고 : 페리스 휠 놀이

1900 파리 : 기구 비행체, 영사기

1904 세인트루이스 : 라이트형제 비행기, 무선 전신탑

1910 브뤼셀 : 에어십, 기차

1915 샌프란시스코 : 포드 자동차, 수상비행기

3층의 제3전시관 표제는 '낙관 신념(樂觀信念; The Optimism of Modernity)'으로 '조화로운 발전과 미래 일별(一瞥)'이라는 두 개 코너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제1차 대전이 종결된 시기 갈등을 극복하고 균형과 평화가 중심 주제로 반영되었을 것이다. 전시관 입구 우측에 마련된 1939년 뉴욕 박람회 전시구역 벽면의 당시 지하철 모습을 담은 대형 흑백 사진이 인상적이다.

1933년 시작된 트라이날레(Triennale)는 3년마다 같은 장소인 밀라노에서만 개최되며, 세계박람회의 하나로서 디자인 업계 사람들의 소통과 창작품들의 전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안쪽에 1958년 브뤼셀에서 개최된 박람회의 평화를 상징한다는 아토미움 축소 모형이 눈에 익다. 1997년 브뤼셀 단기 유학 시절에 방문했던 기억이 가물거린다. 벨기에의 6번째이자 브뤼셀에서 개최된 4번째인 이 박람회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아물어가고 평화, 번영 등 웰빙을 추구하는 소위 ‘소비자의 시대’가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다른 한편 유럽공동체의 토대를 공고히 하고 가속화되고 있는 기술 발전에서 사회발전과 휴머니티로 관심사가 옮아가는 과도기이기도 했다.

 

1962년 시애틀 박람회는 동서 냉전으로 소비에트 공산권 불참한 가운데 개최되었으며, 'Man in the Space Age' 주제 아래 우주에 대한 도전, 동구 대응, 미국식 삶의 방식 등이 부각된 박람회였다고 한다.

4층 전시관의 표제는 '도전(挑戰; A World of Challenges)'으로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로 들어선 때까지 약 40년 동안 월드 엑스포 4회, 특별 엑스포 17회, 원예 엑스포 18회, 밀라노 트리엔날레 4회 등이 개최된 박람회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시관 테마처럼 우주 기술, 로보틱스와 인공지능(AI), 정보통신기술(ICT), 이미지 테크놀로지(3D, HD, IMAX)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이 비약적 진보를 이룬 때로 지속 가능한 발전과 휴머니즘에 기초한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진 시기이기도 하다.

 

1960년 로테르담을 필두로 개최되기 시작한 원예 박람회는 농업, 원예, 조경 분야의 혁신과 정원, 공원, 문화 및 레저 공간을 통한 지역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한다. 1967년 몬트리올 박람회는 'Man and His World' 표제로 개최되었는데 강, 건물, 교량, 도시, 숲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조감도 사진 속 모습이 세련된 도회지라는 느낌을 준다.

 

1970년 오사카 엑스포의 캐치프레이즈는 'Progress and Harmony for Mankind'로 67년 몬트리올 박람회와 마찬가지로 관심의 중심을 '인간'에 두고 있다. 1974년 워싱턴주의 spokane 특별 엑스포는 사상 가장 작은 도시에서 개최된 엑스포로 이름을 올렸다.

 

1992 스페인 세비야 엑스포는 아메리카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여 'The Age of Discovery'라는 표제 아래 개최되었다. 6개월 동안 4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관람한 이 엑스포는 방문객들에게 전통 오페라, 교향악, 연극, 재즈 페스티벌, 플라멩코와 살사 음악 등 풍부한 문화 프로그램을 밤낮으로 제공했다고 한다.

 

세비야 시는 이 엑스포를 계기로 새로운 교량 건설, 공항 시설  개선, 고속 열차 노선 신설 등 도시 발전에 엄청난 활력을 주었고, 엑스포 운동의 정신을 크게 활성화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8년 리스본 특별 엑스포는  포르투갈 최초의 엑스포로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여 'The Ocean, a Heritage for the Future' 주제로 개최되었다.

 

2000년 하노버 엑스포는 독일 최초의 월드 엑스포로 'Mankind - Nature -Technology' 표제 아래 인류를 중심에 두고  환경, 사회문제, 건강, 경제, 기술 등의 지속 가능한 균형적 발전과 21세기의 도전 과제를 강조했다.

 

2015년 이탈리아 밀라노 세계 엑스포 소개 구역에 엑스포 랜드마크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모형이 자리한다. 실제 조형물은 30미터 높이로 나무와 강철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당시 엑스포에 소개되었던 자기 인형 기념품 등 작고 귀엽고 화려한 색채 유니크한 각국의 전시 소품들이 마음을 빼앗는다.

 

2016 터키 안탈리아, 2019년 베이징, 2022년 네덜란드, 2023년 카타르, 2017년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 2020년 두바이, 그리고 2025년에 개최될 예정인 오사카 엑스포도 간략히 소개되고 있다.

 

제5전시관은 2002년 상하이 엑스포 유치 확정 때부터 2010년 10월 31 일 엑스포가 폐막할 때까지 유치 과정, 엑스포의 개요, 기획, 전시장 건설, 엑스포 기간의 주요 행사 등을 소개하고 있다.

 

제6전시관은 '세계문명' 주제로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기간 동안 5개 구역 내 각 참가국, 국제기구, 기업관, 도시관 등 246개 전시관에 전시되었던 독특한 전시품들 중 기증받은 물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다양하고 독특한 전시품들이 작은 세계 민속품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때마침 전시관에 베토벤이 1824년 작곡한 교향곡 9번 합창 제4악장 <환희의 송가>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1759-1805)의 시에 곡을 붙인 성악곡으로 인류의 단결과 우애를 찬양하는 가사 내용이 진보와 발전을 향한 인간들의 창의성과 끝없는 열정에 대한 찬사처럼 느껴진다.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낙원의 딸이여,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빛에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

서로 껴안아라! 만인이여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형제여, 별이 빛나는 하늘 저편에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반드시 계실 것이다!

_쉴러의 시 <환희의 송가> 中

 

한층 한층 6층까지 올라서며 이어지던 동선이 아래층으로 이어지며 다음 전시실로 향한다. 제7전시실 '중화지혜' 홀 대형 화면은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개폐막식, 박람회 장면들, 세계 각국의 전통춤 축하인사, 중국인들이 최고의 국보급 유물로 여기는 청명상하도 속 모습을 재현한 모습 등 파노라마 동영상을 펼쳐 보여 준다. 홀 중앙에는 중국 각 성(省), 홍콩, 마카오, 대만 지역을 상징하는 전시품이나 설명 자료로 구성되어 있다.

 

광동의 동우(铜牛), 샨시의 시녀상(侍女像), 구이저우의 고 동물 화석, 시쟝의 윤장대(輪藏臺), 안후이의 정교한 석각 창문 장식, 경덕진의 도자기, 칭하이성의 세 강의 물을 담은 물통, 허베이의 만리장성 벽돌, 장족의 문고리 장식, 하이난의 황매 나무조각 동물상, 닝샤의 인물 부조 장식 은병, 신쟝의 민속 악기 청벽옥(青碧玉) 등 전시품을 통해 넓은 중국 대륙의 지역별 특성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다.

 

제8관 '미래의 비전' 전시실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트와 계단 옆 벽면을 채우고 있는 어린들의 엑스포 관련 그림들에는 저마다 창의성이 돋보인다. 제8전시실에는 2017년 카자흐스탄의 아스타나, 2020년 두바이, 그리고 2025년 예정된 오사카 박람회가 함께 소개되고 있는데, 이 박물관이 2017년 5월에 개관된 때문일 것이다.

출구로 통하는 '역사의 골짜기(Valley of history)'는 박물관 내부와 건물 중간층 높이의 외부로 연결된 공간으로 베이지색 사암 바닥과 구리-알루미늄 합성 벽면으로 건조되어 중후한 멋과 독특한 위엄을 뿜어낸다. 입체적인 건물 가운데 공간의 유리 철골 건조물은 충칭 선녀산(仙女山)의 천생삼교(天生三橋)를 닮은 듯도 하고 싱가포르의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의 슈퍼 트리(Super tree) 조형물을 연상케도 한다.

 

1851년 런던에서 시작하여 세계 각지의 내라하는 도시들에서 개최되며 170여 년 동안 이어온 세계박람회의 긴 골짜기를 짧은 시간에 훑어보며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이 차고 정신이 아득하다. 우리도 온 국민이 열망하는 2030년 부산 세계박람회를 유치하여 상설 엑스포 박물관 하나쯤 가지게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박물관 1층 기념품점을 훑어보고 복도 안쪽 강당을 들여다보니 푸단대학의 철학학당(哲学课堂)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계단식 극장처럼 큰 강당의 출입문 쪽 맨 뒷줄에 앉아 고대 원시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강의에 잠시 눈과 귀를 기울였다.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자전거를 지쳐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가 있는 마탕루(马堂路)에서 내려 신티엔띠(新天地) 주변을 둘러보고 봄 햇살과 나들이객 가득한 푸싱공원(复兴公园)을 가로질렀다. 공원 내 자리한 마르크스 레닌 동상은 예전처럼 여전하고 중화인민공화국 백성들은 공원의 너른 잔디밭과 벤치 산책로에서  완연한 봄을 만끽하고 있다.

 

푸싱면왕(复兴面王) 식당에서 지친 눈과 다리를 쉬게 하며 야오탕면(腰汤面) 한 그릇을 시켰다. 뜨끈한 국물에 허허롭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불만을 '푸~우'하며 내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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