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강남제일산(江南第一山)
광복절을 낀 3일간의 연휴다. 이틀 후인 광복절이 말복인데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상하이의 삼복더위가 만만찮다. 중국 대륙 내 4대 피서지라는 여산(庐山), 베이따아허(北戴河), 지꽁산(鸡公山), 모깐산(莫干山) 가운데 모깐산이 지척에 있어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으로 차를 몰아 먼 길을 나서는 김에 모깐산을 둘러본 후 붉은빛이 도는 자사(紫砂) 도자기로 유명한 이씽(宜兴)을 거쳐 서울시 네 배 넓이의 타이후(太湖)를 한 바퀴 돌아서 상하이로 돌아오기로 했다.
5:40경 집을 출발해서 타이후 남쪽 후저우(湖州)와 항저우 경계를 이루는 모깐산으로 차를 몰았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아서 상하이와 충칭을 잇는 후위(沪渝), 창처우와 쟈싱(嘉兴)을 잇는 창쟈(常嘉), 상하이-쟈싱-후저우를 잇는 션쟈후(申嘉沪), 리엔쓰와 항저우를 잇는 리엔항(练杭) 등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고속도로를 차례로 갈아탔다.
고속도로변엔 협죽도(夾竹桃)가 앙증맞은 붉은 꽃을 무성한 잎사귀 사이에 머리핀처럼 달고 줄지어 서있다. 초록으로 뒤덮인 끝없이 펼쳐진 평원엔 농가, 전답, 저수지, 수로 등이 연이어 스쳐 지나고 경항 대운하 위로 난 교량도 건넜다. 상하이를 조금 벗어나자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줄지어 달리고 있다. 장강 삼각주 지역의 창장(长江)과 이들 고속도로는 일반화물과 컨테이너 물동량에서 각각 세계 1위를 차지한 닝보와 상하이로 연결된 물류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 여만에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모깐산 자락으로 접어들었다. 상하이에서 모깐산까지 189km를 쉬지 않고 차를 몰아온 것이다. 높고 낮은 산들이 연이어 있는 항저우 부근은 작은 언덕배기조차 없는 상하이 주변과는 풍치가 사뭇 다르다. 대나무로 뒤덮인 완만한 능선들이 예전에 본 적이 없는 묘한 장관을 연출해 내고 있다.
유연한 곡선을 이루며 계곡으로 수렴하는 능선이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격조 있는 여인의 모습을 연상케 하고, 서로 닮은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수 백 수천 만 헤아릴 수 없이 무리지어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은 푸른 제복 군인들의 열병식을 보는 듯도 하고, 이리저리 바람에 쓸리어 군무를 추는 모습이 잔물결로 일렁이는 망망대해를 보고 있는 듯도 하다.
국가 A4급 풍경구로 지정돤 모깐산은 안후이성과 저장성의 서북쪽 경계를 이루는 천목산의 여맥으로 산 전체의 약 93%를 대나무가 차지고 있다고 한다. "숲은 모름지기 혼효림이라야 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격의 없이 모여 서 있을 때 , 비로소 우수한 숲의 사회상을 보여 준다." 수필 <혼효림(混淆林)>에서 언급한 목성균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온통 대나무로 뒤덮인 이곳 모깐산도 나름 저만의 독특한 매력을 지닌 듯 보인다.
풍경구 명소들이 모여 있는 곳 주차장 한 곳을 목적지로 찍고 내비게이션을 따라 가보지만, 고도를 높여가며 서로 겹칠 듯 구절양장처럼 이어지는 산길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위치와 방향을 종잡을 수 없게 한다. 산의 칠부능선쯤 되는 곳 풍경구 명소로 향하는 길목에 경비원 서너 명이 출입 차량을 가로막으며 행선지를 묻는다. 풍경구 안 곳곳에 자리한 호텔과 펜션을 미리 예약해야만 차량 진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나처럼 당일치기 유람객들은 산 아래 환승장에서 버스를 타고 풍경구 안으로 올라야 한다고 하니 대나무 숲의 바닷속 산길을 되짚어 내려올 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모깐산 자락 서편에 자리한 허우우(后坞) 환승장에 차를 세우고 입장료 75위안 포함 111위안에 티켓팅을 하고서 9시경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지나왔던 구불구불한 산길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승용차 두 대가 겨우 스쳐 지나갈 수 있을 듯 보이는 좁은 2차선 산길을 이리저리 휘도는 버스가 몸통을 뒤틀리게 하고 머리는 어질어질해진다.
가파르거나 완만한 능선이나 멀고 가까운 능선 어디를 보아도 모두 곧게 뻗은 굵은 대나무들뿐이다. 특이하게 온통 대나무로 뒤덮인 산과 달리 좁은 길 양 옆으로 송미령이 좋아했다는 프랑스 오동이 가드레일처럼 도열하고 서있다. 산수가 수려한 중국 곳곳에 있는 송미령의 부군 장개석의 별장이 이 산에도 있지만 산길의 오동나무는 수령이 고작 2~30년쯤으로 밖에 보이지 않아 그가 심은 것은 아닐 것이라 짐작된다.
삼십여 분만에 모깐산 여러 명소를 둘러보는 기점이자 셔틀버스 출발지인 해발 500여 미터의 화팅(华厅) 정거장에 도착했다. 짙푸른 대나무 숲 녹음에 묻힌 능선 곳곳에 별장들이 하나둘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마치 서울 평창동을 수십 배로 펼쳐 놓은 듯한 풍치랄까.
여행자센터에서 산 위의 관람 기점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에 셔틀버스를 이용해서 폭포, 계곡, 동굴, 사찰, 서양인들이나 유명인들의 옛 별장 등 주요 명승지를 둘러보는 방식은 이곳도 황산(黄山), 루산(庐山), 어메이샨(峨眉山) 등 이전에 올랐던 중국의 유명한 산들과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산을 찾는다는 의미는 '등산'보다는 '관산(觀山)'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더 굳어졌다.
얼마 전 양양군이 82년부터 추진해왔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업이 42년 만인 2024년에 착공할 예정이라는 뉴스가 있었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고 잘 보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화팅 정류장에서 계곡 옆으로 난 반듯한 돌계단을 따라 대나무 숲 길을 400여 미터 내려갔다. 검지(剑池)에 못 미쳐서 칼을 좋아했다는 오왕 합려(闔閭, BC 515-496)를 위해 보검을 만들었다는 간장(干桨)과 모사(莫邪) 부부 동상이 보인다. 넓고 평탄하게 돌 블록을 깐 간장 부부 동상 부근에는 남녀노소 피서객들이 몰려 있고, 그 가장자리 한편에서는 중년 남성 한 분이 가마솥을 걸고 이 지역 특산 황야차(黄芽茶)를 덖고 있다.
우선 검지를 스쳐지나 계곡 좌측 능선 마루에 자리한 고망오대(古望吴台)로 향했다. 다리는 뻐근하고 대숲 사이로 내려 비치는 태양은 뜨겁다. 산행을 할 때면 항상 느끼는 것처럼 이정표에 쓰인 고망오대까지 100미터라는 거리는 실제로는 훨씬 더 멀게만 느껴진다. 검지에서 칼을 빚다가 이곳에 올라 고향 쪽을 바라다보았다는 간장(干桨) 내외처럼 나도 고망오대(古望吴台)에 자리한 육각정에 올라 남쪽 항저우 쪽 방향의 강남땅을 한참 동안 조망했다.
검지 쪽으로 되돌아오는데 머리는 뜨겁고 몸은 땀으로 끈적인다. 피서가 아니라 혹서기 훈련을 온 듯한 느낌이다. 하기사 진정한 피서는 땀을 통해서 체내의 열기와 노폐물을 빼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간장과 막야의 동상 아래쪽 계곡에 십여 미터 높이의 아담한 폭포가 걸려 있다. 암벽에 '검지(剑池)'라는 붉은색 글자가 적힌 폭포 아래 네댓 평 연못 속에서 유유히 유영하고 있는 황금 주홍 등 화려한 비늘 색 잉어들이야말로 제대로 피서다운 피서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내려왔던 길을 거슬러서 계곡을 낀 돌계단을 따라 화팅 정거장으로 회귀해서 산속에 자리한 명승지를 순회하는 셔틀에 올랐다. 명승지들 가운데 모택동 휴식처를 먼저 둘러보고, 욱광대(旭光台), 무릉촌(武陵村), 장개석 관저, 관일대는 그냥 거르고 대교당(大教堂)과 따컹(大坑) 풍경구를 둘러볼 요량이다.
모택동 휴가처라는 곳은 집무실, 거실, 침실, 화장실 등이 갖춰진 제법 규모 있는 이층짜리 석조 건물이다. 이층에 레닌, 엥겔스, 마르크스 세 인물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출구 쪽 벽면을 채우고 있는 모택동을 비롯 장쩌민, 시진핑 등 공산당 주역들의 사진과 어록을 뒤로하고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곳 셔틀 승강장에서 내려다보는 무성한 대나무 숲 능선 마루 위 뾰쪽한 지붕의 건물은 유럽 어느 도시의 옛 성채를 닮았다. 산중에는 서구식 별장 200여 채와 우체국, 호텔, 산장, 훈련소 등 현대식 건물 50여 채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19C 말과 20C 초에 건축된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저마다 독특한 양식의 건축물들로 인해 이곳은 '세계 건축박물관' 또는 '소형 별장 전람회'로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대나무가 바다(竹海)를 이룬 이곳 산중도 여느 중국 유명 관광지와 별반 다르지 않게 유람객들로 인산인해다. 긴 줄을 서서 기다리기 30여분 만에 올라탄 셔틀버스는 좁은 산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마주오는 버스에 길을 비켜주기도 하며 다음 행선지를 향해 달린다.
욱광대, 무릉촌 등은 그냥 스쳐지나 보내고 대교당 건물 승차장에서 내렸다. 대교당은 1984년 9.3-10일간 제1회 국가 청장년 경제 과학자 포럼, 즉 '모깐산 회의'가 열렸다는 건물이다. 미국인 선교사 헤이스에 의해 1923년 7월 15일 낙성된 기독교인들의 예배와 기도 장소였다지만, 1950년대 이후 회의당으로 용도가 바뀌었다고 하니 공산당 정권이 수립되면서 종교 활동이 억압되고 교회로서의 역할을 잃었을 것이다.
옛 교회당 건물 입구로 들어서니 전면 설교단 쪽으로 비스듬히 경사가 진 내부는 텅 비어있다. 천정을 따라 길게 배열된 빨강 초록 노랑 파랑 네 가지 색 사각형 색유리창들이 단순해 보이면서도 그 자체로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 작품이다. 입구 쪽 벽면과 벽면 창 역시 교회나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화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니라 투명한 유리와 원색 유리의 사각 모자이크 유리창이다. 잠시 뒤쪽 벽면 벤치에 앉아 있으니 절로 마음이 차분해지고 경건해지는 느낌이다.
벽면 벤치에 앉아 다리를 쉬면서 천정과 벽면 등을 살펴보는데, 옆에 앉아 있던 두 아가씨 중 한 명이 색유리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주겠다는 친절을 베푼다. 상하이 송쟝(松江)에서 왔다고 하는 그녀들과 잠시 짧은 얘기를 나눴다.
시곗바늘은 정오가 지나고 오후 1시로 향하고 나는 걸어서 대교당에서 따컹(大坑) 풍경구 쪽으로 향한다. 태양은 구름과 숨바꼭질하며 햇볕을 감추었다 내리비쳤다 한다. 차량 출입이 금지된 아스팔트 보도 느슨한 경사의 숲길을 따라 800여 미터를 올랐다. 풍경구 입구 아래 건물 벽면에 탁자 하나를 기대어 놓고 누구나 따라 마실 수 있도록 큰 차통 하나와 컵 여러 개를 올려놓았다.
검지 부근에서 덖고 있던 이 지역 특산 황야차의 맛이 궁금했다. 꼭지를 눌러 한 잔을 따라서 천천히 마시니 따뜻한 물에 우러나온 찻잎의 텁텁한 맛이 열기로 들뜬 속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듯 개운하다.
따컹 풍경구로 들어서니 봉우리 아래쪽 산허리를 오른쪽으로 휘도는 산길에 키 낮은 산죽 군락이 맞이한다. 낮은 능선 위의 풍력 발전기, 위 하늘의 뭉게구름, 골짜기를 따라 들어선 낮은 주택들, 물결치듯 겹겹 멀어지는 능선 등 툭 트인 전망이 펼치는 풍치는 한 폭 그림 같다.
낙석이 폭포를 이룬 곤석폭(滚石瀑), 구름다리 류운교(流云桥), 전망대 연비정(燕飞亭) 등을 차례로 지나고, 병풍처럼 막아선 석병애(石屏崖) 절벽 옆면으로 난 길을 따라 바윗돌이 층층 쌍인 괴석각(怪石角) 위로 올라서면 평탄한 능선이 나온다.
중문과 함께 한글로 '구름 꼭대기'라고 표기된 이정표를 따라 능선 저편 봉우리 운정(云亭) 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운정 위에 자리한 육각 콘크리트 정자 일람정(一览亭)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만끽해 본다. 고도계는 이곳이 703.9미터라고 알린다.
앞쪽 조금 더 높아 보이는 봉오리엔 회전식 레이더가 쉬지 않고 돌고 있다. 아마도 모깐산의 최고봉인 탑산(塔山)이 아닐까 짐작된다. 젊은 산객들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운정의 오른쪽 허리를 휘돌아서 풍경구 입구 쪽으로 내려섰다.
따컹 풍경구 입구에서 내려오는 길에 대나무 숲 속에서 자란다는 황야차 한 잔을 더 마셨다. 아미노산, 테아닌, 글루탐산의 함량이 다른 지역 10여 종의 명차보다 크게 웃돈다는 평가도 있다. 뜨거운 차 한 잔에 속이 편안해지는 듯하다.
여행자 안내센터까지 셔틀버스가 운행하는 기점인 인산지에(阴山街)의 한낮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화창(华厂) 정거장까지 걸어 내려와서 버스로 옮겨 타고 차를 세워둔 산 아래 허우우(后坞) 환승장으로 돌아왔다.
손수 차를 몰아서 먼길을 달려오는 수고와 번거로움이 있긴 했지만, 도시의 빌딩 숲을 벗어나 중국 4대 피서지 중 하나라는 모깐산의 대나무 숲 푸른 바다에 잠시나마 몸을 담갔으니 더 큰 욕심을 부려서 무얼 할까 싶다. 자신의 꽃말처럼 '행복'한 '꿈'을 이룬 듯 환승장 옆 너른 공터에서 빨강 노랑 분홍 등 온갖 빛깔의 꽃을 피워낸 백일홍 군락의 작별 인사를 받으며 모깐산 자락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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