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강남 땅 호텔에서 격리 일주일째 날 아침을 맞는다. 굵은 빗줄기가 두르리거나 빗물이 맺혀 있던 너른 통유리창으로 오랜만에 햇빛이 들이치고 있다. 창밖 유유히 흐르는 너른 강폭의 황포강 위를 크고 작은 화물선들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TV를 켜니 CCTV를 비롯한 여러 채널에서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제4차 회의를 생중계하고 있다. 개회에 앞서 울려 퍼진 중국 국가(國歌)의 내용이 궁금했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국기 국가 국화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는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웹사이트를 뒤적여 중국의 공식적인 국가(國義歌)가 <의용군 행진곡(義勇軍進行曲)>임을 알게 되었다. 이 곡은 2017.9.1일 제12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 제29차 회의에서 채택된 「중화인민공화국 國歌法」에서 국가로 명시되었다고 한다.
【义勇军进行曲】https://mr.baidu.com/r/1p1wA3H7irm?f=cp&u=811b6d6b3e4866af
일어서라!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자들이여!
우리 살과 피로 새로운 장성을 세우자!
起來! 不愿做奴隷的人們
把我們的血肉筑成我們新的長城。
중화민족이 마주한 절체 위기의 이 순간
모두 최후의 함성을 내지르자!
일어서라 일어서 일어서!
中華民族到了最危險的時候,
每個人被迫着發出最后的吼聲。
起來 起來 起!來
모두 한마음으로
적의 포화에 맞서 전진하자!
적의 포화에 맞서
전진 전진 전진-진!
我們万衆一心, 冒着衆敵人的砲火,
前進! 冒着敵人的砲火,
前進 前進 前進進!
- 작사 田汉, 작곡 聂耳
전쟁의 화약 내음이 묻어 있는 미국 국가, 일면 시적 여운을 남기는 일본 기미가요, 애잔한 조국애가 담긴 우리 애국가와 달리 중국 국가는 계급 해방의 기치를 외치고 있다. 가사를 모르고 들을 때와 달리 뜻을 음미하며 듣는 중국 국가에서는 전장의 처절함과 더불어 어떤 비장감(悲壯感)마저 느껴진다.
중국 국기(國旗)는 혁명을 의미하는 빨간색 바탕에 붉은 대지의 빛을 상징하는 노란색 별 다섯 개가 있는 오성홍기(五星紅旗)다. 큰 별은 공산당, 작은 별 4개는 각각 농민, 노동자, 소부르주아, 민족 부르주아를 의미하고, 공산당의 지도 아래 혁명적 통일과 인민의 단결을 상징한다고 한다.
국민당 정부를 타이완 섬으로 내쫓고 대륙을 차지한 공산당은 1949년 국가 수립을 앞두고 '국기 및 국장 선정위원회'를 두고 한 달여간 공모를 통해 2,992건의 디자인을 접수하고, 그 해 9.27일 중국인민정치협의회 전국위원회 제1차 총회에서 오성홍기를 국기로 채택했다고 한다.
공산당은 1949.10.1일 천안문 광장에 처음으로 오성홍기를 게양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다. 그 후 오성홍기는 1954년 제1차 전인대 제1차 회기에서 채택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에 국기로 명시된다.
국가나 국기와는 달리 대외 상징성이 덜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은 국화(國花)에 대해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2019년 꽃 선호도 조사 전국 투표에서 모란, 연꽃, 국화, 매화 중 모란이 득표율 79.91%를 차지했다고 하니 부귀와 화려함을 좋아하는 중국인로서는 당연한 선택인 듯하다.
북송의 주돈이(1017-1073), 성리학 창시자로 알려진 그는 애련설(愛蓮說)에서 꽃 가운데 은일자(隱逸者)인 국화나 부귀자(富貴者)인 모란보다 꽃 가운데 군자인 연꽃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모란을 제일 좋아하나 보다. 조만간 전인대(全人代)에서 모란을 국화로 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유독 연꽃을 사랑하노니,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럽혀지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으며, 속은 비어 넓고 밖은 곧으며, 덩굴이나 가지도 없고,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욱 맑으며, 우뚝한 모습으로 깨끗하게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뿐 함부로 하거나 가지고 놀 수 없음이다."
予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 濯淸漣而不夭 中通外直 不蔓不枝 香遠益淸 亭亭淨植 可遠觀而不可褻翫焉.
- 주돈이, 애련설(愛蓮說) 中 -
우리나라는 2007.1.26일 「대한민국 국기법」을 제정하여 동 법 제4조에서 "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극기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국기와는 달리 국가와 국화에 관한 법은 아직까지 없다고 한다. 학교의 교가, 교기, 교화는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들도 자신을 상징하는 깃발, 노래, 꽃, 동물 등을 명문화하고 있으니 의당 국가에 관한 법 제정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 나라의 국가(國歌)를 법으로 명시하지 않은 것은 입법부는 의무 해태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심히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른 봄 가장 먼저 피어 개척과 발전을 상징한다는 상하이의 시화(市花) 목련(白玉蘭)은 지난달에 벌써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앞으로 남은 일주일 간의 격리가 끝나면 목련도 다 지고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매년 봄 지는 목련을 보면서 애잔한 상념에 잠기곤 했으니 목련을 보지 못하고 봄을 보낸다면 아쉬움이 적지 않겠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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