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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민(인민; 人民) 공원 봄봄

라오짱(老張) 2024. 8. 20. 17:59

상하이 중심구 황푸구의 런민따따오(人民大道) 북쪽에 런민공원이 자리한다. 원래 그 남쪽의 런민광장과 함께 경마장이었다가 1952년 공원으로 개원하며 천이(陳毅) 당시 시장이 제명을 했다고 한다.

사실 인민공원은 상하이 이외에 청두 텐진 우루무치 옌지(延吉) 광저우 정저우 동완(东莞) 안양 난양 진양(锦阳) 등 중국 내 많은 도시에도 같은 이름의 공원이 있으니 우리나라 여느 도시의 '중앙공원'처럼 흔한 이름이다.

인터넷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에 찾아보니 상해에는 150여 개의 공원이 있다. 상해 동물원, 상해 식물원, 진산 식물원, 회룡담공원 등 18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료 개방된 공원이라고 한다. 인구 24백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로 얼핏 삭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강, 운하, 공원, 녹지, 문화공간 등이 잘 어우러진 모습을 대하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한다.

임시 거소 부근에도 수이시아(水霞), 시엔시아(仙霞) 등 공원이 있고 여기저기 녹지도 있어 저녁이면 산책을 하거나 남녀 주민들이 서로 어우러져 음악에 맞춰 율동을 하고 춤을 추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러우샨관(娄山关) 역에서 2호선을 타고 런민광장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런민광장역은 3개 노선이 교차하는 결절지로 대륙 최대 도시의 심장부답게 지하보도의 스케일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런민광장역에서 내려 17번 출구로 나와 공원으로 들어서니 화창한 휴일을 맞은 공원은 다양한 꽃들이 만개했고, 벚꽃나무 아래에는 얼굴마다 한껏 미소를 머금은 상춘객들이 한 컷 사진에 추억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다.

벚꽃과 여러 화초들이 어우러진 정원과 수목 사이 산책로 따라 어린이 놀이터(游乐园)를 비껴 지났다. 한국과 다를 바 없이 이곳도 봄날씨의 변덕과 일교차가 커서 얇은 겉옷마저 부담스럽고 이마에 땀이 삐져나온다.

상해 당대예술관(当代艺术馆) 앞 공터에서는 경쾌한 음악에 맞춰 막대에 매단 넓고 긴 리본을 돌리며 춤을 추는 일단의 여성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고 있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비추이후(壁翠湖) 연못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굴곡진 연못 위 짧은 다리를 건너니 상해시 역사박물관 쪽으로 난 공원 산책로 200여 미터를 따라 이색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저마다 산책로 땅바닥에 코팅을 한 A4용지를 내려놓고 그 앞에 촘촘히 앉아 있는 나이 든 아주머니들과  산책로를 빼곡히 메운 인파들, 말로만 듣던 정작 주인은 없는 런민공원의 샹친지아오(相親角)인 모양이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야외 맞선 시장이라고나 할까.

땅바닥에 놓인 종이에는 이름 생년 출신지 학력 키 직업 연봉 등 신상정보와 함께 '상해에 집', '부유’, ‘온화’ 등 재력, 용모, 성격 등 장점들을 나열하고 있고, 더러는 사진까지 첨부한 경우도 있다. 그 대부분은 딸을 둔 어머니들이 사윗감을 찾는 것인데,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대학 졸업, 외국 유학, 신장 165cm 전후, 전문 직업, 수준급인 연봉 등 만만찮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상하이 학부모의 교육열이 대단하다느니, 상하이 남편들은 모두 공처가라는 말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자녀 배우자를 찾는 일까지 이렇게 극성일 줄은 몰랐었다. 프로필 전단에 적힌 생년이 대개 80년대인 것으로 보아,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바라보는 자식 앞에서 안달이 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종이에 적힌 스펙대로라면 모두 선남선녀나 다름없는 상하이 골드 미스 미스터들은 왜 결혼을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하지 않는 것일까? 이른 아침부터 종일토록 공원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자식들 짝 찾기에 노심초사하고 있을 부모들, 저들에게 손자 손녀 손을 잡고 공원을 거니는 작은 행복이라도 안겨드려야 하지 않을까? 인생은 짧고 부모는 기다리질 않고 젊음도 짧은 봄날처럼 금세 훌쩍 지나가 버릴 터이니 말이다.

북적이는 인파를 뚫고 지나가는데 마주 오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내 팔을 붙잡더니 다짜고짜로 "아들이냐 딸이냐"라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고 구경꾼이라고 대답하기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둘러 역사박물관 쪽으로 민망한 발길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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