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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명동 난징루 보행가 거리

라오짱(老張) 2024. 8. 22. 08:56


날 좋은 봄날 저녁이다. 일찌감치 저녁을 들고 산책 삼아 밖으로 나섰다. 전철 10호선을 타고 난징동루(南京东路) 역에서 내려 6번 출구 닝보루(宁波路) 쪽으로 나와서 난징루 보행가(步行街) 거리 쪽으로 걸었다.


종으로 뻗은 허난중루(河南中路)와 횡으로 뻗은 난징동루가 교차하는 곳에서 시작하는 보행가 거리는 서쪽의 시장중루(西藏中路)까지 1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와이탄 쪽을 등지고 허난 중로를 건너면 보행자 거리 초입에서 상징 조형물이 맞이한다. 그 우측 항기(恒基) 빌딩 1층 미국 애플의 대형 스마트 폰 매장에는 많은 손님들로 북적인다. 보행가 쪽으로 낸 전면 유리창이 가시 공간을 바깥으로 확장하여 넓은 공간이 더욱 넓어 보인다. 허난중루 건너편 화웨이 매장도 크고 넓기는 마찬가지다.

그 반면, 애플 매장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우리나라 삼성 폰 매장은 애플 매장에 비해 좁고 답답하고, 진열된 제품도 경쟁사에 비해 눈에 띄게 초라해 보인다. 기왕에 경쟁사와 마주 보며 매장을 열었을 바에야 우월하지는 못할망정 대등한 규모로 구색을 갖추어야지, 왜 이처럼 한눈에 보아도 비교가 되지 않게 해 놓았는지 의아할 뿐이다.

불현듯 황실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 황제에게 간택되지 못하고, 흉노의 왕에게 시집을 가야 했던 한나라 원제 때의 궁녀 왕소군(王昭君)이 떠올랐다. 서시(西施), 초선(貂蟬), 양귀비(楊貴妃)와 함께 중국 4대 미녀 중 한 사람으로 절세의 미녀였다는 그녀처럼, 우수한 품질을 갖추고도 경쟁사와 비교되는 초라한 행색의 매장 때문에 저평가되고 고객들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징루 보행가의 애플 매장과 즉석복권 부스

난징루 보행가 양쪽으로 늘어선 독특한 건물들은 애플, 삼성, innisfree, watsons, 레고, 나이키, 리바이스, 스와치, 폴로, 필라, M&M 등 명품 브랜드 전시관이나 다름없다.

한편, 보행가에서 곁가지로 난 샨시난루(山西南路) 푸지엔중루(福建中路) 저장중로(浙江中路) 등 소로로 들어서면 각양각색 크고 작은 음식점들에서 진한 음식 내음이 풍겨 나온다. 그중 산시난루 골목길 초입 어느 식당에서 쑤저우 양청후(阳澄湖)에서 나는 털게(大闸蟹) 메뉴를 발견했다. 장강 어귀 근해에서 부화한 어린 게가 장강을 거슬러 올라 후허강(湖河港) 유역에서 자란다고 한다. 이 게의 특별했던 맛을 기억하기에 언젠가 한 번 와서 맛보리라 식당 이름을 찜하고 발길을 옮긴다.

보행가 거리 한가운데 복권 판매소가 두어 군데 보이는데 젊은이들이 창구 앞에 빼곡히 모여서 즉석 복권을 긁고 있다. 가로로 숨겨진 다섯 개 숫자를 맞춰야 당첨이 되는데, 일곱 줄짜리는 20위엔 세 줄 짜리는 10위엔이라는데 복권을 긁는 표정이 진지해 보인다. 우리도 예전에 저 나름의 목적이나 의도 아래 또는 심심풀이로 주택복권 스포츠복권 로또 등을 샀던 기억이 있지만, 미래의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할 젊은이들이 허황된 대박을 쫓고 있는 듯 보여 끌끌 혀를 차게 한다.


저쟝중루(浙江中路)와 후베이루(湖北路)가 보행가 좌우로 나뉘는 교차점에 조명을 받아 금색으로 빛나는 영안백화(永安百货) 빌딩을 가운데 두고, 우측에 'MIDO'라는 글자와 더불어 커다란 벽시계로 장식된 시장상점(时装商店), 좌측에 'I♡SH'라는 엠블럼이 선명한 화교상점(华侨商店) 등 세 빌딩이 모여 있다. 맞은편 건널목에서 유니크한 세 빌딩을 마주 보는 순간 마치 뉴욕의 타임 스퀘어에 서있는 착각에 빠질 뻔했다.

와이탄에서 월스트리트에 있어야 할 청동 '황소상(Charging bull)'과 똑같이 생긴 황소상을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었었다. 옛 HSBC 은행 건물 맞은편 와이탄 금융 광장에 있는 2.5톤 동으로 만든 황소상(Bund bull)은 상하이 경제와 금융가를 상징한다고 한다.

둘 다 지난 2월 타계한 이탈리아 조각가 아르투로 디 모디카(Arturo Di Modica)의 작품으로 뉴욕과 와이탄에 1989년과 2010년에 각각 세워졌더란다. 제작 당시 뉴욕의 황소상 보다 더 강하고 크게 만들어 달라는 중국 측 요구를 작가가 거부했다는 일화를 누구에겐가 들은 듯하다.

뉴욕 황소상이 무게 3.2톤 길이 4.9미터 상하이 황소상이 무게 2.5톤 길이 5.2미터라고 하니 어느 녀석이 더 강한 놈인지 알 수가 없다. 세계 제2강으로 올라서며 미국과 패권을 다투는 중국의 대표 도시에서 미국 대표 도시의 단편적 모습이 보여 묘한 느낌이 들었다.

 

보행가 좌우 몇몇 곳을 들러보았다. 선물용품 판매점(江南礼物厅)은 호사스럽게 치장된 입구와는 달리 판매하고 있는 물건들은 조악해서 딱히 손에 잡을 만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써짱상창(时装商店) 1층에 자리한 옷가게들에 진열된 의류들도 패션을 이끌어가기는 고사하고 시대를 따라가기에도 버거운 상품들만 조용히 매장을 지키고 있다. 번드르르한 건물들이 아무리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도 그에 걸맞게 속을 채울 알맹이가 없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보행가는 한 시간 반 만에 시짱중루(西藏中路)를 만나며 끝이 나고 길 건너편 좌측에서 인민공원이 맞이한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는 보행가 거리 주변 곳곳을 천천히 좀 더 자세히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자꾸 고개를 쳐들며 시비를 거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다독이며 전철역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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